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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Nov 03. 2016

아빠 주례사

그날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 짧게하자



주례사를 기억하는 분이 있는지?


인상적인 주례사는 신랑 신부에게 보다는 하객들에게 더 기억이 남게 되는 것 같다. 과거는 신랑 신부가 긴장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할 수 있겠지만, 요즘 신랑 신부들은 교제기간이 길어서인지 예식장에서 별로 긴장한 모습을 찾기 힘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머리 속에 주례말씀을 기억할 여유는 없는 것 같다.


나의 경우 대학 은사께서 주례를 맡아 주셨는데 지금 기억에 남아 있는 내용은 없다. 좋은 말씀을 해 주셨던 것 같은데 생각나는게 없다.


과거에는 사회적 저명인사를 비롯해 은사, 기업체 사장, 목사와 신부 같은 분들이 주로 주례를 맡아 하거나 없는 경우는 주례를 전문으로 해주는 분에게 사례비를 주고 주례를 했다. 근엄한 인상의 중년 노신사가 연단에 올라와서 틀에 박힌 진행과 더불어 양가 자녀와 부모의 장점을 늘어놓고 지루한 주례사를 듣는 방식의 주례가 많았다.


어느 땐가부터 주례없는 결혼식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신랑신부가 서로에게 맹세를 하고 마치는 경우도 있고 신랑 신부의 부모들이 차례로 덕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집안 잔치에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와서 주례를 하는 것 보다는 의미도 있고 보기도 좋아 보인다. 결혼식이 형식적인 통과의례가 아니라 점점 축제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주례사는 너무 길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멋진 주례사도 너무 길면 호응을 얻을 수 없다. 그날 메인은 주례가 아니고 신랑신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얘기에 도취되어 몇십 분씩 주례를 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 차라리 짧게 느껴지는 주례사가 환영받는다. 짧지만 의미있는 주례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주례사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어차피 그날 주례를 듣는 사람은 신랑 신부이기 보다는 하객들이라 생각하고 짧은 주례사 마저도 신랑 신부가 기억하기를 기대하지는 말자.


우선, 결혼하기를 선택해준 신혼부부에게 감사하자...


무엇보다 점점 더 힘들고 막막해지는 현실 속에서 오포, 칠포세대라는 말로 쉽게 결혼에 이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용기 잃지 않고 미래를 함께 하기로 약속한 신랑 신부 두 주인공들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제가 **살 난 아들을 장가 보낸다니 하니 부러워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요즘 자녀들이 결혼시기도 늦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결혼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오늘 결혼하게 된 두 자녀들이 사랑스럽고 고맙게 여겨집니다.


다음은 기억하기는 힘들겠지만 정말 필요한 얘기를 짧막하게 전해보자....그리고 사람들이 기억하기 제일 좋다는 세 가지를 넘지 말자!


이미 결혼을 하고 지금 껏 살아오신 이 자리의 모든 분들은 같은 마음이겠지만, 결혼식은 이제 두 사람이 함께 살기로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일 뿐 어떤 아름다운 미래도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가 생기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내와 남편이라는 새로운 관계에서부터 시부모와 장인 내외 분, 그리고 그 친인척과의 새로운 관계가 생기게 되는 날입니다. 이 새로운 관계는 앞으로의 결혼생활에서 축복이 되기도 하고 장애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먼 훗날 여러분의 자녀가 결혼할 때 쯤 회고할때 지금 이 순간이 축복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도록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운명같은 사랑을 만들어 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운명같은 사랑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만이 바로 두 사람이 오늘부터 추구해야할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 '너는 나의 운명이었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랑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더 부탁드릴 것은 물질적인 가치에 의해 두사람의 본질적인 가치가 상처받고 훼손되지 않도록 성숙한 결혼생활이 되기 바랍니다. 살다보면 경제적인 부분이 삶의 본질을 위협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럴때일수록 보다 중요한 가치를 생각하면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두 젊은이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참석해 주신 양가 하객분들에 감사 드리며, 간략한 인사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친 주례사를 예쁘게 프린트 해서 신랑 신부에게 전하자, 그러면 나중에라도 한번 되새기면서 볼 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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