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그렇듯 서울은 늘 바쁘고 빠르게 흐르는 도시인 반면 리마는 굉장히 여유롭고 느긋해 보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 같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급할 것 없다는 태도로 항상 여유가 있었다. 후에 예기치 못한 돌발적인 사고나 사건이 생겨도 그들의 긍정적이고 느긋한 성향 때문에 '남미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하고 여행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영향을 받아서였던 것 같다.
리마의 구시가지
리마의 시내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구시가지는 신시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페루를 비롯한 남미의 여러 국가 들은 불안한 치안으로 악명이 높기도 해서 거리를 다닐 때에는 위험지역을 기피하고 항상 소매치기 등을 조심해야 한다. 이런 치안 문제들 때문에 남미를 여행하는 많은 여행자들은 긴장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걱정만 앞서다가는 여행을 즐길 수 없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스스로를 잘 지키는 일이다.
거리를 나서 도시의 중심가인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했다. 아르마스 광장은 남미 어느 도시를 가도 만날 수 있는 광장이다. '아르마스(armas)'란 무기류를 뜻하는 말로, 스페인 침략 당시 이 광장을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하며 무기를 배급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광장을 중심으로 성장했기에 도시 메인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대통령궁과 시청, 대성당 등 중요한 기관들이 주변에 들어서게 되었다. 리마는 광장의 중심가로부터 도시의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어 전체 경관을 해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KFC나 스타벅스 등 간판의 색이 검은색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페루, 리마 시내의 전경
신시가지의 대로를 따라 걷다 문득 하늘을 보니 커다랗고 검은 새가 도시를 빙글빙글 돌며 날고 있었다. 검은 새는 무리를 지어 날기도 하고 건물의 조각상이나 지붕에 앉아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독수리인가 싶었는데 그 크기가 독수리와 비교가 되지 않게 거대하다. 나는 이 때 콘도르를 처음 보았다. 나중에 페루 인근의 동물보호소에 들리게 되었을 때 콘도르를 자세히보았는데 날렵하고 무섭게 보이는 생김새뿐만 아니라 크기도 1미터나 되니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면 무척 놀랄만하다.
리마의 식당들
페루는 300년 가까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왔기에 도시 곳곳에 유럽 양식의 건물들이 지어져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언어도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종교도 90% 이상이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믿는다.
아르마스 광장의 주변 거리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뭘 먹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몇 해 전 예능프로그램이었던 '꽃보다 청춘' 페루 편에서 유희열, 이적, 윤상 세람이 맛있게 먹었다던 '세비체'맛집 푼토아줄을 가기로 했다.
45일간의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어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단연 '고산증과 음식'이라 꼽을 것이다. 물론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들도 여럿 먹었지만, 남미 대부분의 음식들이 굉장히 짜다. 유럽의 음식들도 짜다고들 하지만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음식을 먹을 때에는 꼭 탄산음료나 맥주를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푼토아줄은 여행자들이 많이 들리는 레스토랑이어서 그런지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서비스나 음식은 꽤 괜찮았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다시 도시의 곳곳을 걸어 다닌다. 도심에서 주택가 쪽으로 들어오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만큼 커다란 선인장
'어? 저건 뭐야?'
주택의 담을 넘어 보이는 그것은 '선인장'이었다. 그것도 집만큼 큰.
집채만 한 선인장이라니! 경악스러웠다. 한국에서 보던 선인장들이야 기껏 다육식물 정도 거나 조금 커야 사람 키 정도 되었는데 이곳의 선인장들은 그 크기나 생김새가 차원이 달랐다. 어쩌다 돌연변이처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큰 선인장 하나가 있던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한 그루씩 자라나 있었다. 가만 보니 거리의 가로수조차 거목으로 된 나무들로 즐비했으니 한국의 골목이나 거리에서 보던 모습들과는 많이 달랐다.
'역시 남미구나'라는 감탄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오후 내내 거리를 탐험이라도 하듯 다니1 다가 너무 늦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너무 늦게 다니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가급적이면 밤에 돌아다니는 일은 만들지 말자 생각했다.
최근 몇 년간 하루를 이렇게 길고 여유 있게 보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바쁘고 빠르게만 지내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던 나에게 이곳 리마에서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며 새로운 감정들을 조금씩 채워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