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지숙 Sep 17. 2023

푸드페스티벌에 갔다가 데친성을 만나다

2023년 4월 15일 토요일

일인용 밥솥에 쌀을 안치고 필요한 게 있어 주방에 들렀더니 팀원 가운데 서넛이 앉아 데친 푸드페스티벌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뭔 말이냐니까 엘베강 강변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푸드페스티벌이 오늘 열린다고 했다. 숙소주인 겸 가이드인 데친 샘한테서 전해 들었는지, 데친 관련 소식을 계속 서치하고 있어서인지 일행 중 몇몇은 마치 이곳에 사는 주민 못잖게 정보가 빠삭했다. 

단톡에 정보 관련 링크를 부탁하고 방에 들어와 클릭해보니 페스티벌 장소가 데친성(캐슬 데친) 아래였다. 전에 데친성 쪽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산책코스도 좋고 뭣보다 인공적인 손을 대지 않은 길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더랬다. 산책길도 다시 걸을 겸 드레스덴 출정은 내일로 미루고 푸드 페스티벌에 갔다. 

열시 정각에 숙소에서 나와 강변을 걸어 다리를 건너갔는데 아직 시간이 일러서인지 푸드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공예품 가게와 어린 손님들을 유혹하는 장난감 마차와 소금가게, 향수가게, 맥주병을 늘어놓은 가게가 더러 보였다. 얼룩덜룩한 리플렛을 쌓아놓은 가게가 네댓 군데 차려져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 데친 지도가 많이 보였다. 커피 파는 카페 가게도 있어 마끼야또를 시켰는데 커피맛은 하나도 안 나고 90프로 우유만 들어있었다. 가격도 무려 80코루나(5000원 정도)로 비쌌다. 

마차 가게들을 들여다보고 다녀도 음식 마차는 들어설 기미가 없었다. 아점을 사먹으려고 간 나는 배가 고파 마차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사탕으로 허기를 달래다가 산책길로 빠져나갔다. 

데친성을 지나 산책길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려던 차에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 둘이 데친성으로 난 좁은 길을 걸어 들어갔다. 무심코 그들을 따라갔다. 그게 데친성으로 올라가는 샛길이었다. 저번에는 그 좁은 길을 보지 못해 그냥 산책만 했던 것이고, 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셈이다. 

언덕으로 난 길을 구불구불 올라 아마도 후문이지 싶은 데친성 입구 계단을 올라서자 로비격인 작은 마당이 있었다. 마당으로 올라서자 갑자기 시야가 확 열리면서 데친시가 사방으로 다 보였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 위에 얹힌 모양새인 데친성이니 낮은 언덕조차 없이 강줄기 따라 형성된 데친시가 다 보이는 건 당연한 일. 

데친성 구조가 데친성 건물과 여신들의 조각상이 세워진 뷰 전망대를 양쪽 끝으로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난 정원을 걸어가 여신상이 있는 꼭대기에 오르니 이 성을 공짜로 들어온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특이한 건 데친성을 돌아다니는 공작새. 성의 정원에 공작이 여러 마리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사람을 별로 겁내지도 않았다. 공작이 이 성을 지은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동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꼬리가 어마무시하게 길었는데, 찾아보니 깃이 크고 화려한 종은 인도공작과 자바공작이란다. 생김새를 보니 인도공작 같았다.

이리저리 다니며 데친성을 구경하고,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데친 마을을 구경했다. 며칠 전 패키지여행에서 본 성들, 체코의 가장 아름다운 성 시리즈에 들어가는 리토미슐성, 레드니체성, 흘루보카성, 체스키크롬로프성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데친 성에서 나는 16세 수줍은 소녀의 매력과 청순함이 감도는 성의 순정하고 친근한 아름다움을 만났다. 내 눈에 가장 아름답고 멋진 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진심 마음이 가는 성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아, 오해가 있으면 안 되므로 데친 푸드페스티벌을 보충해야겠다.

데친성 둘러보고 내려오니 엘베강 강변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몰려있는 게 보였다. 내가 건너온 다리를 중심으로 물이 흐르는 방향에는 푸드 트럭이 운집했고, 반대편에는 아침 일찍 나온 공예품이나 직접 그린 그림엽서 가게 같은 게 장사가 잘 안 되는 한산한 모습으로 늘어서 있었다.

푸드트럭은 마차마다 줄이 서 있어 제법 오래 기다린 끝에 분짜이지 싶은(마차에서 미리 소스에 고기와 국수를 넣은) 베트남 음식을 사먹었다.      


이전 16화 여기 시간은 저녁 여섯 시 사십육 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