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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숙 Sep 16. 2023

모라브스크 크롬로프와 체스코크롬로프

2023년 4월 13일

새벽에 일어나 레드니체 호텔 베란다에서 신화 속의 강이 이 호텔 정원을 찾아들었나 싶은 풍경을 만났다. 맨발로 꼼짝 않고 서서 강과 마주하고 섰다가 문득 한기에 흐드드 떨며 방으로 쫓겨 들어왔다. 

아침 8시 레드니체를 떠나 모라비아의 크롬로프라 불리는 모라브스크 부데요비치로 달렸다. 비가 흩뿌리는 길을 두 시간쯤 달렸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초록으로 고즈넉해 지루하지는 않았다. 

모라브스크 크롬로프에서 뮤지엄 캄파(kampa, 프라하에 있는 뮤지엄캄파가 더 크고 현대작품을 다양하게 소장)에 들러 알폰소 무하의 슬라브에픽 스무 점을 감상했다. 슬라브민족의 역사를 서사적으로 풀어낸 그림 연작인데, 알폰소 스스로 투자자를 구해 몇년에 걸쳐 대장정의 역작을 낸 듯했다. 그 내용을 자세하게 풀어서 써놓은 글을 읽어서인지, 그림이 직관적이어서인지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 구경하고 나온 것 같았다.

모라비아크롬로프를 떠나 남서쪽으로 두 시간가량 달렸나. 주유소에서 다들 화장실 이용하고 커피 한 잔 사서 차에 올라 한 시간 반쯤 더 달려 보헤미아의 크롬로프라 불리는 체스코크롬로프에 도착했다.

여기서 부산에서부터 함께 참여했던 두 동행 H와 S는 파리로 4박5일 여행을 떠났다. 체코 북쪽 변방의 시골 데친에 머무는 게 답답하고 지겹다면서 과감히 국외탈출을 감행한 것. 잘츠부르크로 가서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구경하고 돌아올 계획이란다.

두 사람 보내고 나는 친하지 않은 여섯 명과 어울려 다니느니 길을 잃더라도 편하게 다니자 싶어 혼자 돌아다녔다. 

체스코는 '체코의'라는 뜻이고 크롬로프는 '말발굽모양의 마을'을 의미하니까 체스코크롬로프는 체코의 말발굽모양 마을이 되겠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겁나겁나 예쁘다.

나는 풍선 타고 체코에서 가장 예쁜 마을에 퐁당 내려앉은 기분으로 마을을 돌아다녔다. 말발굽모양으로 돌아흐르는 볼타바 강의 다리를 건너고, 광장을 거닐고, 골목을 돌고,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뷰팟에서 마구마구 사진을 찍지 않았겠나.

그렇게 힘빼고 내려와 광장 근처 식당에서 거금 359크로나짜리 굴라시를 먹고, 마지막으로 간 곳이 이름이 어지간히 안 외워지는 흘루보카 성.

체코에서 가장 예쁜 마을에 이어 윈저 성을 본따 지은, 체코에서 가장 예쁜 성이라고 일컬어지는 흘루보카 성을 구경했다. 정원도 되게 넓고 볼 만했는데 레드니체 성의 정원을 본 기억이 워낙 압도적이서리…

역시 너무 잘난 친구나 형제자매가 가까이 있는 건 좀 그렇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지금 시각 18시 45분. 우리를 태운 벤은 프라하로 달리고 있고 19시30분쯤 도착할 예정이란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20시45분 기차로 갈아타고 데친 숙소로 갈 예정이다. 2박3일 우리 아홉 명 여행객을 인솔한 강샘과 벤 기사님의 수고가 컸다.     


*우리가 2박3일 다녀온 곳을 순서대로 적어 보면 이렇다

데친역 출발 - 캐슬 쿡스 – 리토미슐 – 브르노 – 레드니체 - 남보헤미아 주 라티보리시 - 체스키클롬로프(체스케 부데요비치) - 프라하(환승) - 데친 숙소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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