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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숙 Sep 16. 2023

리토미슐과 레드니체의 아름다움

2023년 4월 12일

어젯밤 우리가 묵은 곳은 체코 파르두비체 주에 위치한 리토미슐의 즐라타호텔. 

리토미슐이라는 미술적인 이름과는 달리, 리토미슐은 스메타나라는 체코의 국민음악가를 기리는 마을이다. 

스메타나 광장에 있는 즐라타호텔에서 새벽광장을 내려다보며 마을의 지형지물을 살펴보고 뛰어내려가 동네를 골목골목 돌았다. 고개를 들면 그림이고 발길 돌리면 예쁜 엽서고 아 서면 사진작품이 나온다는, 유럽의 전형적인 예쁜 마을이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리토미슐이라는 마을이름. 장거리여행 떠나는 게 지겨워지면 돈 까먹는 카페 겸 출판사 사무실 하나 딱 차리고, 리토미슐이라는 이름을 붙여볼까 하는 공상 한 자락 진하게 했다.

아침을 뷔페로 거하게 먹고 단체로 리토미슐 성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리토미슐 성은 5월인가 6월에 있을 음악제 준비로 공사 중이었다. 밖에서만 구경하다가 어째저째 사정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스메타나 음악제 준비공사가 건물리모델링을 방불케하는 규모로 진행되고 있었다.

스메타나라는 음악가 한 사람을 기려 온 도시 전체가 음악제에, 광장에, 회랑에, 카페에, 길에 그의 이름을 붙여 기리는 걸 보니 애국심과는 결이 좀 다른 자국에 대한 자긍심과 자국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자연이든 인물이든 자신들의 자산을 귀히 여겨 문화적 자산으로 키워가는 저런 노력이 체코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힘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리토미슐 성을 내려오며 잘 가꿔진 정원과 마을에 진심 감탄했더니 가이드해 주시는 강샘이 이곳 리토미슐이 '영혼의 스파'라는 별명을 갖고있다고 했다. 짧게 만난 마을이지만 공감이 갔다.

리토미슐을 떠나 체코 남모라바 주에 위치한 레드니체로 향했다. 가는 길에 프라하에 이어 체코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인 브르노에 들렀다. 잠깐이었지만 체코의 대도시 분위기를 맛봤고 시장 구경도 했다. 카페의 바깥테이블에 앉아 식사도 하고 커피도 한잔했다. 맛만 본셈이다. 

레드니체에는 두 개의 멋진 성이 있는데 하나는 겨울별장이라 불리는 발디체 성이고, 또 하나는 여름별장이라 불리는 레드니체 성이다. 레드니체가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이 두 성인 듯했다.  

그렇게나 유명하고 멋진 발디체 성을 순식간에 둘러보고(패키지가 그렇지 머) 우리 일행은 성 근처에 있는 와이너리에 들어갔다. 와인 종류마다 일련번호를 붙여 100미터쯤 되는 지하 룸에 병을 진열해놓고 시음을 하고 살 수 있게 해놓았다. 원래는 10유로를 주고 마음껏 시음을 할 수 있는데 그걸 몰랐던 나와 H는 잔 두 잔을 가져와서 네댓 개를 따라 맛을 보았다. 물론 맛본 와인은 구입했다. 일행들 거의 구매한도인 두 병씩 사서 보물처럼 들고 나왔다.

오늘의 종착지는 여름별장인 레드니체. 짐을 풀고 내려와 르네상스에 지어졌다는 레드니체 성을 보고 그 곁에서 시작되는 광대한 정원을 산책했다. 가위손 정원사가 다녀간 듯 잘 조성된 프랑스식 정원을 지나 자연스러운 미를 살린 영국식 정원을 거닐었다. 

삼십 분쯤 걸어가자 모스코 지붕 같은 게 보여 강샘에게 물으니 미나렛이라 했다. 멀찍이서 보고 다들 돌아갈까 말까 하다 우리 3인조는 끝까지 가보자고 했다. 우리 3인조 말고 다른 팀원들(그들 수는 6명인데 대체로 여섯 명이 같이 어울려 다닌다)도 한 명 빼고 이슬람 신전(모스코)의 부수건물인 미나렛(미나레트)가 세워진 곳까지 걸어갔다. 

거기서 나는 '오늘의 그것'을 만났다. ‘그것’은 내 속의 응어리를 직관하는 무엇이었고, 나는 얼어붙었다. 내 영혼의 외로움과 갈망을 알아보고 눈길을 맞추고 나의 농담에 밴 슬픔에 슬픔을 더해 충일하게 존재를 붙들어주는 그것은, 오늘 미나레트 앞으로 흐르는 물길에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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