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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Mar 05. 2022

나의 이혼이야기.16

16.그러지 말지 그랬어

 그날은 평범한 하루였다. 난 출근해서 먹을 도시락을 싸기 위해 햄을 볶고 늦은 아침 출근시간을 재촉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대학원 사무실에 도착해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랑 친한 대학원생과 수다를 몇 마디 떠는데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어머니의 첫마디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뭐해?"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이상하게 격양되고 떨리고 불안하고 굵은 목소리. '나야 출근했지, 왜?'라고 묻자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


 "니 아버지가 목을 맸다... 집에서 목을 맸어... 내가 잠깐 슈퍼 갔다 오는 사이에..."


 정말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게 이런 것일까. "나 바로 갈게." 황망했다. 횡설수설 동료와 대학원생에게 "저 집에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아빠가 목을 매서..."그리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머니가 첫마디로 '뭐해?'라고 물은  너무나 언발란스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전화를 시작했을까? 드라마였으면 받자마자 '00... 글쎄,  아버지가 목을 맸다.'라고 했을 텐데.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다. 막상 정말 황망한 일이 닥치면 사람의 머리는 아무 생각도 없어지고 너무나 어색한 처음 만나는 상황을 어떻게든 상쇄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첫마디로 일상적 인척 '뭐해' 나오는 것이다.


 학교 앞에서 미친 듯이 울면서 택시를 기다리며 막상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그 사람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첫마디가 '뭐 하고 있었어?"였다. 그리고 미친 듯이 울으면서 아빠가 이러이러했다,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도 친정 집으로 오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미칠 것 같은 답답함과 황당함과 슬픔이 몰려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누군가는 죽음을 준비하며 집 문턱에 못을 받고 밧줄을 매던 그 순간 나는 늦은 아침 출근을 원망하며 도시락을 싸고 있었구나. 역겹고 토할 거 같았다.


 집에 도착하니 집 앞에 119 차량이 있었다. 내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언니들은 이미 와서 집은 울음바다이자 각자의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무겁게 집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시신은 수습되어 119 차량에 실렸다.


 어머니가 잠깐 집 앞 슈퍼에 뭐 사러 간 사이 아버지는 자기 방 화장실에 못을 박고 목을 맸다. 어머니가 인공호흡을 해봤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후라고 했다.


 난 아버지의 시신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볼 자신이 없었다. 그 엄청난 현실 앞에 난 비열함을 선택했다. 난 겁쟁이에 비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신을 보고 나면 다신 살아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불효녀든 이기적이든 날 보호하고 싶었다.


 칠순 잔치를 했던 집은 일주일 만에 초상집으로 변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고향에 자신의 묏자리까지 정해놓고 100만 원 넘는 멋들어진 비석도 제작해놨었다.


 그러나 연습장 한 장 찢어서 써놓은 유서에는 화장해달라. 최대한 간소하게 해 달라. 사인펜으로 휘갈겨쓴 글씨. 언제 써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정말 충격이었다. 차라리 교통사고나 다른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면 덜 충격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살'은 데미지가 너무 컸다.


 언니들의 충격도 컸다. 그리고 자살자의 가족들은 '자살'이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조문객들이 어떻게 돌아가셨나 물어보면 '평소 당뇨병이라 합병증이 심해서 돌아가셨다.'라고 했다.


 이상한 나라  기분이었다. 자살자의 가족은 뭔가 범죄라고 저지른 것처럼 우린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 온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실제로 당뇨병으로 인한 여러 가지 합병증-췌장, 전립선 등등-으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실제로 돌아가신 전날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소변줄을 꽂았었는데 그게 너무나 고통 스러 밤새 아파했다고 어머니께 들었다.


 우린 장례식에서 쾌활한 척했다. 생각보다 육개장이 맛있다는 둥 1층에 있는 별다방 커피를 먹는 둥...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술 한 잔 하며 눈물을 흘리며 서로 자신의 탓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픔을 제대로 이야기도 못할 정도로 우린 너무 아팠다. 셋째 언니는 이번 주에 아버지 겨울 파카 좋은 거 하나 사서 가려고 했는데... 라며 눈물을 흘렸다. 사실 나도 아버지가 전립선 때문에 고생한다는 소릴 듣고 전립선에 좋다는 영양제를 사서 가려고 했었다. 했었다...라는 과거 가정형 문장이 되어버렸지만.


 내가 조금 놀랐던 건 그렇게 아버지의 이쁨을 받았던 그 사람이 처음엔 눈물을 흘리고 슬퍼했지만 그다음부터는 아무런 데미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때문이었다. 이건 나중에 자신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 정말 대조되는 데 그 사람은 그때서야 가족을 잃는다는 것의 슬픔을 알았다고 했다. 난 기가 막혔다. 이건 더 나중의 일.


 




 아버지 유언대로 아버지의 시신은 화장을 했다. 화장하고 유골함을 받았는데 너무나 뜨거웠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하면서 유골함을 받은 언니는 울었다. 그 말에 우리도 울었다. 차를 타고 가깝지 않은 거리를 가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버지의 고향 청도에 도착해서 다니던 절에 유골함을 맡기고 절 뒷산에 유골을 뿌렸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도 우린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머릿속은 터질 듯했겠지만 그 누구도 입을 뗄 생각을 못했다. 입을 여는 순간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망가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친정에 돌아왔다. 삼우제라 다 같이 3일은 집에 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온몸과 마음이 지쳐서 정말 기진맥진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더니 어머니가 아프시니 지금 나랑 같이 어머니한테 가자는 것이었다. 그때는 막 아버지의 장지에서 도착한 때었다.


 어머님이 어떻게 안 좋냐고 묻자 사정상 시어머님은 떨어져서 혼자 지내시는데 우리 아버지의 장례식에 오시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누이가 '엄마가 거길 혼자 왜 가냐, 엄마 혼자 가면 얼마나 이상하게 보겠냐, 절대 갈 생각하지 마라.'라고 해서 두 분이 싸운 모양이었다. 시어머니는 싸우다 너무 혈압이 올라 어지럽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당장 시어머님께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기가 차서 "방금 우리 아빠 장지 갔다 왔어!! 우리 아빠 뿌리고 왔다고!!!"라고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그 사람은 그래도 엄마가 지금 이런 상황인데 무조건 같이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의 다툼 소리가 커지자 언니들이 무슨 일인가 해서 우리 방에 들어왔다. 내가 울음 반, 말 반으로 짐승같이 소릴 내면서 "아니, 지금 자기 엄마한테 가자고 하잖아... 지금 막 우리 아빠 보내고 왔는데... 지금 나한테 어떻게 그런 소릴 할 수가 있어....!! 혼자 갔다 와 그렇게 걱정되면!"라고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언니는 그 사람에게 "그래.. 너 혼자 다녀오는 게 나을 것 같아... 얘까지 데려가는 건 지금은 좀 그런 거 같아."라고 했고 그 사람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겉옷을 챙겨 자기 엄마한테 달려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조금의 지체도 없이 나가버렸다.


 난 너무 야속하고 야속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그 순간 바란 건 위로와 사과였는데. 그 사람은 그런 순간이 반복될 때 한 번도 그렇게 해 준 적이 없었다. 만약 "미안해. 이럴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엄마가 그런데 너무 걱정돼."라고 한 마디라도 해줬다면.


 그 뒷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가던. 그리고 그건 내게 뼈 깊은 증오로 자리 잡았다.


 후속담을 말하자면 시어머니는 누워 계시니 괜찮아지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알아챘어야 하는데. 가족이 그 사람의 아킬레스 건이자 겹겹이 똘똘 뭉쳐진 자격지심의 근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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