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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Mar 01. 2022

나의 이혼이야기.15

15.아버지

 아버지는 자신의 칠순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호텔 레스토랑에서 성대하게 하고 싶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곳에서 스테이크를 썰 거라고.


 나랑 언니들은 아버지의 칠순을 그리 축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없었다. 그저 본인이 원하니까 그렇게 해주자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칠순이 다가오자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당뇨병이 있어서 여러 합병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몸이 아프니 모든 게 의미 없고 이미 그때 마음으로는 계획을 한 듯하다.


 칠순 보름 전 즘. 아버지는 갑자기 어머니한테 싸우고 독립해 나간 언니들을 부르라고 했다. 셋째 언니, 넷째 언니는 영문도 모르고 불려 왔고 아버지는 정말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게 전화해서 ‘아빠가 이상하다. 셋째, 넷째를 불러서 다 자기가 잘못했다. 미안하다’라고 했다며 극적인 가족 화해의 현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정말 놀랐다. 정말 우리 아버지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미묘한 감동과 뭉클함 사이에서 “웬일이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돌아가실 때가 됐나?”라는 과한 농담으로 어색한 감동을 숨겼다.


 아직은 ‘너무 잘됐다. 아빠가 그렇게 변하다니 정말 행복해. 정말 오래 기다린 일이야.’라고 하기엔 뭔가 쑥스럽고 아버지에 대한 내 태도를 확 바꾸는 게 어색했기 때문이리라.


 정말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니. ‘이제 우리 집도 따스한 보통의 가정처럼 정을 나눌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에 설레면서도 묘한 현실과의 이질감까지 느껴졌다.


 어머니 통신에 의하면 아버지의 부름에 언니들이 집에 온 그날은 감동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언니들이 쭈뼛쭈뼛 집 문 앞에서 들어가려는데 아버지는 옛날로 치면 버선발로 마중 나오듯 문 앞까지 언니들을 마중 나와서 잘 왔다고 어서 들어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미안했다고 사과하고 언니들은 얼떨떨하고 어머니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라고…


 사실 언니들을 부르라고 할 때부터 어머니는 이상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찾아와도 쳐다도 안 보던 모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딸들을 부르라고 하는지. 평생을 살며 본 사람이라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아는데. 그래서 눈앞의 일을 보면서 누구보다 어머니는 놀라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칠순.

감동의 화해 후에 언니들은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호텔에서 식사를 하려고 예약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그냥 집에서 밥이나 먹고 조용히 지나가자고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와 제일 미운 정이 많이 든 어머니와 나는 그럼 집에서라도 스테이크를 구워서 먹자 계획을 세웠다. 호텔 스테이크 느낌을 내려고 야채도 볶아서 옆에 놓고 집에 풍선과 리본도 붙이고 나름 준비를 많이 했다. 큰 집 조카들도 불러서 집 안엔 사람이 북적북적했고 언니들도 다 와서 그야말로 성대한 칠순잔치가 되었다.


 난 그때 정말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꺼내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울고 넘는 박달재”를 연주했다. 바이올린은 내가 너무나 예전부터 배우고 싶어 20살이 됐을 때 언니 카드 찬스로 샀던 악기였다. (언니에게 다달이 카드값을 갚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워낙 레슨비의 압박에 띄엄띄엄 배우기도 하고 연습도 잘 안 하고… 생각보다 어려운 악기라 결국 내 실력은 ‘라시라시’만 연습하던 초보의 실력에 머물고 말았다.


 더구나 아버지의 칠순이라 사람도 많아서 뭔가 엄청 긴장되고 떨려서 가뜩이나 잘하지 못하던 연주-라고 할 수도 없지만-를 더욱 못하고 말았다. 삑사리의 향연. 도대체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는 미궁. 그래서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분이 끝나자 다들 엄청 웃고 말았다. 난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속으로 연습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고 궁실 궁실 바이올린을 챙겨 넣었다.


 그날은 그랬다. 다들 이상하게 기분이 격상되어 있었다. 술이라도 잔뜩 먹은 사람들처럼 취한 듯이. 시끌시끌하고 누가  마디라도 하면 와하하하하  천장이 날아갈 듯이 웃고. 정말 행복하고 꿈결 같았다. 그날은 정말.


 다들 상을 둘러싸고 앉아 재미없는 뻔한 농담에도 깔깔 웃고 온갖 갈등은 해소되는 일일드라마 마지막회처럼.


 사진도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그 누구도 그날의 사진을 갖고 있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우리는 지금도 칠순- 그날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에 대해서도.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 아픈 이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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