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에 저녁을 먹다 체했습니다.
교회 주일 학교 일정을 모두 마치고, 잠시 카페에 들렸다가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마침 아이들과 아내가 먼저 귀가한 터라, 앗싸 자유시간, 하면서 오후 잠깐의 시간을 아껴가며 책도 읽고 글을 쓰다가 집에 왔는데
밀린 집안일을 돕기 위해 눈치 껏(유부남들은 알 꺼예요. 자유시간 이후 열일하는 척 허둥지둥 일하는), 급하게 밥을 먹다가 그만 급체를 하였습니다. 체끼가 너무 심했어요. 그래서 다음날 다다음날까지 소화가 잘 안되고 어지럽더라구요. 숨쉬는 것도 불편하고. 일터에 있는데 업무에 집중도 쉽지 않고 몸 컨디션도 엉망이라 힘든 이틀간이었습니다.
이틀이 지나 다행히 컨디션은 회복이 되었는데 여전히 소화는 잘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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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예전에도 이런 적 있어, 하면서 증상을 찾아보니 담적증이라는 병명이 나옵니다. 소화가 안되고 숨이 가프고 두통이 심한. 양방에서 쓰이는 병명은 아니고 한방에서 진단하는 병명입니다. 참고로 한방에서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들은 난치병일 가능성이 높더라구요.
소화가 안되고 숨쉬기가 불편하고 어지럽고 손발은 차갑고, 가스는 차고 배는 딱딱하고. 병명은 담적증이라고 하지만, 긴장했을때 걱정이 많을때 발생하는 증상과 비슷합니다. 유튜브 댓글을 보니 대개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 발현하는 병같아 보입니다. 공황장애나 자율신경실조증과 결이 비슷하기도 합니다.
더 찾아보는 걸 멈춥니다. 무슨 문제인지 알거 같거든요. 저도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아,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 좀 하는 편입니다.
증상에 대해 더 찾아보는 걸 멈추는 이유는, 몸 한 곳이 아프기 시작하면 계속 찾아보고 그 증상에 집중하고 관찰해서 대증적으로 치료법을 찾는 노력을 지속하는 등, 아프다는 사실에 완전히 매몰되는 제 성향 덕입니다. 그래서 제 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의도적으로 적당히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건강 염려증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더 찾아보는 걸 멈추고 '됐다, 아는 병이네.' 하고 맙니다. 적게 먹고 더 많이 움직이면 된다, 생각합니다. 그게 담적증이라는 병에 쉽게 걸리는 체질에 딱인 치료법이라고 믿습니다. 45살쯤 되니 제 성향을 이제야 어렴풋하게 파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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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뿐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멈춰야 합니다. 회사 일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잘 해야 겠다고 두 주먹을 꽉쥐거나, 내가 없으면 이 회사 안돌아가지 같은 책임감을 무리하게 갖거나 업무 자체에 대해 부담감을 크게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적당히가 좋다는 의미입니다.
몰입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저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면, 한발 빼기의 자질이 필요합니다. 자질이라고 하면 타고 나는게 크지만, 연습을 통해 충분히 습관화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회사에서 장부상에 100억 손실을 낸 재무팀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장부상의 실수와 실제 손익간 어떤 관계가 있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실수가 있던 건 사실입니다.
주52시간 제도가 실시된 첫 해였는데, 우리 같이 용역이 주요 매출액인 회사는 용역에 투입되는 공수에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만전을 기했어야 하는데, 예년처럼 4분기에 공수를 잔뜩 쏟아부어 진행 매출을 맞출 계획이었나 봅니다.
저는 이미 1분기에 이런 이슈에 대비해야 한다고 알람을 주고 팀장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일일이 담당자들 찾아다니면서 대응책을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제 업무 중 하나였거든요. 리스크 관리.
그렇지만 아무도 제 알람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침에 시끄럽게 울리는 자명종을 귀찮다면서 꺼버리고선, 회사에 지각을 한 꼴이었어요. 아, 알람이 제대로 안울려서요, 변명 하면서.
그 이후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요?
놀랍게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대표님이 격분하셨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제가 보고 듣지는 못했으니까요.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 그 이후 별다른 재발방지대책이나 후속조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 일을 무마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믿은 만큼 실수한 조직이 얄미웠습니다. 적당히 했으면 적당히 얄미웠을텐데요. 최선을 다했기에 최선을 다해 미워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저는 회사에 크게 중요한 일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비약이 심하지만 수치로 환산하면 우리는 100억까지는 실수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사회생활하는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놀랍도록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 일도 없다!!!
그러니 회사 일에 너무 많이 개입하여 크게 걱정해서, 심지어 입맛을 잃거나 밤에 잠에 못드는 그런 과오는 없길 바랍니다. 회사 일로 몸과 마음을 헤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습니다. 일을 망치는 것보다 몸을 망치는게 더 큰 과오입니다. 저는 이런 과오를 지난 10여년간 저질렀습니다. 지금 여기 저기 몸과 마음이 아픈건 과거 저의 과오에서 비롯한 제가 짊어질 죄과 같습니다.
회사 생활의 덕목은 몰입보다
한 발 빼기에 있습니다.
내가 맡은 일을 대충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되 그 후에 발생하는 일은 잊어버리라는 이야기입니다. 회사와 나를 물아일체 하지 말고 시간과 물리적 거리들 모두,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저 같이 담적증을 앓는 사람이라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