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렇게 피고 진다 : 연작 (6)
배롱나무 붉은 꽃잎은
세월 젖은 기둥 위로 흘러내리고,
기왓장 위 켜켜이 쌓인 세월,
꽃이 되어 묵은 나무를 안아준다.
고택의 바람 사이,
여름은 오래된 창을 열고
흩어진 나의 젊음,
붉은 꽃잎으로 다시 불러오네...
하목정에 들어서니, 붉게 핀 배롱나무 꽃잎이 정자 곁을 가득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 햇살에 반짝이는 꽃잎은 마치 마지막 순간까지 불타오르려는 듯, 한 송이도 허투루 피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붉음은 단순한 꽃잎의 색채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이겨낸 나무의 결심 같고, 곧 다가올 계절을 향한 간절한 몸짓 같았습니다.
문득 생각이 스칩니다.
저 꽃잎이 모두 떨어지면 이 여름의 뜨거움도 스러지고,
대지는 차가워져 곧 단풍이 찾아오겠지요.
배롱나무는 마치 단풍을 재촉하듯, 자신이 가진 온 힘을 다해 붉음을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꽃잎의 붉음은 여름의 끝이자 가을의 시작을 잇는 징검다리 같았습니다.
그리고 계절은 그 다리를 건너듯 소리 없이 자리를 옮기고 있었습니다.
하목정은 그 붉음 속에서도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고즈넉하고 깊은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기둥에 몸을 기대어 바라보는 풍경은 단순한 정원의 한 장면을 넘어, 시간의 흐름을 눈앞에 펼쳐 놓는 듯했습니다.
정자의 기와와 기둥은 세월에 젖어 있었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꽃은 여전히 젊고 뜨거웠습니다.
고택의 정자와 배롱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지나간 것과 지금 살아 있는 것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듯한 풍경입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하나가 내 어깨에 내려앉자,
잃어버린 나의 젊음도 저 붉은 빛 속에서 잠시나마 다시 깨어나는 듯했습니다.
하목정에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여름은 오래된 창을 열고, 내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뜨거운 젊음의 기억과 열정을 불러내고 있었습니다.
하목정을 나와 발걸음을 옮기며 다시 뒤돌아보니,
여전히 붉은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붉음은 애절했지만 동시에 힘찼습니다.
마치 우리 삶의 어느 순간처럼,
끝나가는 것 속에서 오히려 가장 빛나고,
사라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가장 강렬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목정 #배롱나무 #기러기 #꽃잎
* 하목정은 “노을속을 날아오르는 기러기” 란 뜻이다.
당나라 왕발(王勃)이 지은 <등왕각기(騰王閣記)> 서(序)에
"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아가고, 가을 물은 먼 하늘색과 한 빛이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고 쓴 데서 따왔다. [나무위키에서 인용]
* 사진은 친구가 찍은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