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렇게 피고 진다 : 연작 (4)
하늘까지 올라 사랑을 꿈꾼 능소화.
그리고 그 꿈의 끝,
가장 고운 모양으로
툭. 툭. 툭.
자신을 내려놓은 능소화.
붉다.
눈이 시릴 만큼,
피워내는 감정이 과할 만큼.
능소화가 피어난다.
모든 꽃이 스러진 여름,
세상이 무르익고
모든 초록이 지쳐 숨을 고를 때
홀로 담장 아래에 몸을 붙인다.
스스로 불을 붙여
가장 붉은색으로 자신을 밝혀낸다.
기다린다, 단 한 사람을.
그의 눈길, 그의 발걸음,
그 사람의 숨결 하나만을 위해
자신의 계절을 늦춘다.
기댈 곳이 있어야 피어나는 꽃.
담장을 타야만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존재.
욕망의 벽에 갇혀
사랑이라는 감정의 벽을 타고
그녀는 천천히, 멈추지 않고 타오른다.
햇살보다 뜨거운 속마음,
바람을 핑계 삼은 갈망에
한 걸음, 한 걸음,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따라
그녀는 담장을 오른다
누가 오는지 보고 싶어서
그리움이 어떤 얼굴을 하고 오는지 알고 싶어서
그렇게 능소화는 담장을 오른다.
기다림과 욕망,
두 이름 사이에서 그녀는 자신을 태운다.
누군가를 향한 손짓인지,
스스로를 넘어서기 위해서인지,
바라보지 않는 사람을 바라보며,
다가서지 못할 곳을 향해 오르며,
스스로를 붉게 밀어 올린다.
그녀는 알까.
사랑은 담장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없는 것이라는 것을.
기어이 다다르면,
자취도 없이 그 자리는 비어 있다는 것을.
아무도 오지 않는 길 위에서
혼자 온몸을 다 태우고 있었다는 것을.
사랑을 원했던 욕망은 점점 더 깊어지고,
더는 애원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더 단단해진다.
담장은 기댈 곳이 아니라 감옥이었고,
바라보는 곳은 더는 희망이 아니라 탈출구였다.
가장 뜨거운 날,
능소화는 그렇게 피어났다.
그녀는 믿었다.
사랑이 존재하기만 하면
살아 있을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은 욕망이었고, 살아남기 위한 열망이었다.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그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욕망.
누구의 시선에도 허락하지 않은 자태,
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붉은 몸.
줄기마다 숨긴 감정 하나,
잎 사이사이 머문 망설임,
꽃잎 끝 붉게 타오른 갈망.
이 모든 것은,
욕망의 무게로 자신을 지탱한 흔적이었고,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가두는 울림이었다.
피어나는 순간부터
능소화는 스스로에게 가장 어려운 시험을 건넸다.
그리고, 그 순간이 찾아온다.
붉게 타오른 채,
시들지 않고, 쪼그라들지 않고,
줄기 하나 꺾이지 않은 채로
가장 고운 모습으로 자신의 무게를 다 지닌 채,
그녀는 떨어진다.
툭. 툭...
피어있는 것처럼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그 모양 그대로 그녀는 세상과 단절한다.
사랑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그 어떤 손길도 머물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붉게 타오른 자태로
자신의 무게로, 그녀는 떨어진다.
그녀는 끝까지 품었다.
사랑을 원했던 갈망도,
단 한 사람을 향한 기다림도.
결국 둘 사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조용히, 그러나 고결하게,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사랑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지려 했고,
기다려서는 안 되는 순간에도 기다렸다.
그러나 능소화는,
자신이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끝내 부정하지 않았다.
붉음은 죄였고,
열망은 기도였다.
그 둘 사이에서
능소화는 피었고, 소리 없이 졌다.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채.
오직 자신만을 지킨 채.
가장 단단한 붉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