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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여름

사랑은 이렇게 피고 진다 : 연작 (2)

by 헬리오스



체리 -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여름

사랑은 이렇게 피고 진다 : 연작 (2)



체리는 단단한 껍질을 입고 있지만,

조금만 힘을 주면 놀라울 만큼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나고,

그 즙은 순식간에 내 입안 가득, 붉은 여름처럼 퍼져나간다.

… …

... ... ...


모든 신들이 물러난 어느 오후,

체리나무 그늘 아래 그녀와 그가 마주 앉았다.

아프로디테는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은 불안정해, 아레스. 그런데 그게 좋아.”

그 말은 바람보다 가벼웠고, 그녀의 가슴에 떨어지는 체리 한 알처럼 붉었다.


아레스는 말없이 체리 하나를

그녀의 입술 끝에 올려놓았고,

그 붉고 단단한 열매 위로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체리 한 알을 입에 넣는 순간,

세상의 첫 욕망이 파도처럼 밀려들고

여름이 물들기 시작한다.

아프로디테의 입술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즙,

그것은 사랑도, 피도 아닌

이름조차 허락되지 않은 순수한 욕망이었다.


사랑은 그들에게 어떤 약속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혀끝에서 퍼지는 짧고도 강렬한 맛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조심스럽게 베어 물었고,

그 순간마다 새로운 감각이, 새로운 떨림이

익은 체리처럼 조용히 터졌다.

그녀는 열매였고,

그의 혀는 그것을 천천히 탐색하는 늦은 여름날 햇살 같았다.



사랑의 여신조차 외면할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아름다움의 순간.

그녀의 숨결과 그의 입술 사이로

작고 조용한 체온이 오가던 찰나,

사랑이 물들며 익어간다.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태양의 빛처럼 서로를 붉게 물들이고,

마침내 가장 깊고 연약한 속살까지 은밀하게 스며든다.

그녀의 몸은

세상 모든 빛을 머금고

하루 종일 햇살 아래 익어가는 체리처럼

붉게, 더 붉게 시간을 들여 천천히 물들어간다.


익기 직전의 체리처럼

단단함은 유혹이었고,

숨결 사이로 번지는 물컹한 속살 아래

감정은 여리고 연약한 채,

은밀하게, 그러나 격렬하게 터져 나온다.


둘의 감정은 팽팽히 당겨져

서로의 혀끝에서 달게 무너졌고,

속은 부드럽고 쉽게 상처 나지만,

혀끝에 남는 감미와

깊숙이 스며드는 산미에 서로는 떨었다.



한 알의 체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즙은 오래도록 남았다.

모든 감각이 지나간 뒤에도

혀끝 어딘가에 감도는 그 맛처럼.

사랑도 그랬다.

짧고 격렬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이토록 작고,

이토록 붉으며,

이토록 짧은, 그러나 잊히지 않는 한 입의 사랑.


그 밤, 아프로디테는 체리처럼 붉게 익었고,

아레스는 그녀를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가장 신성한 열기로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끝에 남은 하나의 씨앗.

다 먹고 난 뒤에도 입안에 남는 단단한 것,

그 작은 무게를

그들은 오래도록 가슴에 품게 되었다.

... ... ...

... ...

...


사랑도 단단한 껍질 너머에

금세 터질 것 같은 열기를 품고 있고,

한 번 입에 넣으면 잊혀지지 않는 맛으로 남는다.

붉은 즙처럼, 혀끝처럼, 여름처럼

그리고... 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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