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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연약한 순간...

가을, 사랑의 끝에서 : 연작 (4)

by 헬리오스

가장 연약한 순간...

가을, 사랑의 끝에서 : 연작 (4)



아, 가을이 왔다.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불길처럼 서로를 삼키던 그 열정,

모든 것이 빛나던 그 날들은

이제 서늘한 가을 바람에 쫓기듯 흩어져 간다.


여름이 계속되었다면,

님과의 사랑은 아직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을 텐데.

여름의 태양이 계속 우리를 덮고 있었다면

내 마음은 여전히 타오르고,

님도 그 불꽃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

서늘한 공기 속에서

나는 여름의 열기를 더듬으며

손끝으로 그 뜨거움을 다시 붙잡으려 하지만,

남는 것은 허공뿐이다.


가을은 그저 계절일 뿐인데,
왜 이토록 잔인한가.
님의 미소는 더 멀어지고,

가을은 무심하게 님과 나를 가르고,

뜨거운 불꽃은 이제 서늘한 재가 되어

내 손바닥 위에서 차갑게 식어만 간다.
그 미소의 온기는 서늘한 바람에 휩쓸려
끝내 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님의 온기를 빼앗아 간 것은
가을이라는 계절일까, 아니면 사랑 그 자체일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님은 천사처럼 잔인하며, 악마처럼 달콤하다.
천사의 미소로 다가와 내 마음을 열게 하고,
악마의 속삭임으로 그 마음을 서서히 잠식한다.
그 잔인함은 단칼에 베어내는 고통이 아니라,
나를 조금씩, 그러나 끝내 완전히
저항조차 하지 못하게 무력하게 만든다.
나는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이
그 앞에서 무너져 내리며,
그 무너짐마저 사랑의 증거라 믿게 된다.
탄식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침묵 속에서,
사랑은 나를 살리며 동시에 죽인다.


님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가 된다.
님의 눈빛 하나, 손끝의 떨림 하나에도
내 마음은 얇은 유리잔처럼 금이 가기 시작한다.
숨조차 쉽게 쉬지 못하고,
님의 한마디에 몸이 떨리고,
님의 침묵에 나의 영혼이 얼어붙는다.


님을 믿었을 때,
나는 그 믿음 위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칼날 위의 꽃잎 같아서,
조금만 바람이 스쳐도
산산이 흩어지고, 피를 흘리며 상처 입는다.
내가 님을 믿을수록,
내가 더 깊이 사랑할수록,

그 믿음은 더욱 가혹한 시련으로 나를 덮친다.


사랑은 이렇게 달콤하면서도 잔인하다.
님의 미소가 나를 살게 하고,
님의 침묵이 나를 죽인다.
나는 님에게 닿고자 손을 내밀지만,
그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님의 따스함이 아니라
나의 무력함, 나의 공허함뿐이다.


가을이 오자
바람은 나의 그리움을 몰고 가고,

추억은 다시 그 바람을 타고 되돌아온다.

나는 여름을 원망하며
그 끝없는 뜨거움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계절은 돌아오지 않고
단지 쓸쓸함만이 겹겹이 쌓여간다.


가을의 낙엽처럼,
사랑은 처음에는 찬란하게 타오르다가
결국은 바람에 실려 흩어져 간다.
그러나 그 끝에서조차
나는 여전히 님을 향해 손을 뻗는다.
스스로 무너지고 찢겨나가면서도,
다시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끝없는 순환 속에서.


이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은
나를 가장 깊이 살게 하고,
동시에 가장 깊이 상처 입게 한다.
나는 부서진 조각으로 또다시 님을 사랑하고,
그 부서진 조각은 나를 더 연약하게 만든다.


아, 내가 가장 연약해지는 그 순간이,
사랑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니.
비록 그 빛이 가을의 바람 속에서 사그라들고,
나를 끝내 재와 쓸쓸함으로 묻어버린다 해도,
나는 그 서늘한 가을의 불꽃 속에서
마지막까지 님의 이름을 부르리.



#문학 #사랑 #가을 # 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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