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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썰 May 20. 2024

먼지

20240520/월/흐림다 맑음/소만, 세계 꿀벌의 날

#먼지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 '소만'(小滿)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로 여름의 시작점을 의미한다. 덥다.

겨울 난방기 시절부터 씻기고 싶었던 시스템 에어컨을 드디어 씻기는 날이다. 본격 여름철 시작 전에 하려 했는데 절기에 딱 맞춘 듯 괜히 뿌듯하다.

라운지 운영시간 때문에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작업을 맡겨야 했다. 돈 내고 맡기는 일이지만 청소업체 사장님께 좀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낮에 오신 손님과 꽤 긴 시간 상담을 빙자한 담소를 나누고 서둘러 라운지를 정리한다. 7시 58분. 거의 도착하셨겠지? 전화를 건다. 또 고질병이 도진다. 초코빵 하나로 점심을 때우고 저녁식사 전 공복이라 훅 올라온다. 8시 반으로 알고 오시는 중이고 조금 늦을 거 같아서 40분쯤 도착하신단다. 잠시 숨을 참고 이해한 척 ‘어쩔 수 없죠. 조심해서 천천히 오세요.’ 후~ 가슴속에서 먼지 한 줌이 숨을 통해 나오는 듯.


먼지를 볼 때, 가끔 이 녀석들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본 먼지요정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토토로를 제대로 보기 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청소할 때 도망가는 녀석들을 목격하고부터다. 특히 시선이 지나가면 먼 쪽으로 움직이는 걸 곁눈질로 보게 된다. 그리고 늘 열려있는 내 방문 벽 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녀석들을 보며 살짝 소름이 돋은 적도 있다. 암튼, 먼지는 늘 우리 주변에 있다. 쓸어도 생기고, 빨아들여 버려도 그 자리에 또. 내 뇌에도, 내 마음에도 잠시만 방심하면 쌓이는 놈들.


주린 배와 속상한 마음을 추스르고, 가방에 챙겨 넣은 태블릿을 다시 꺼내 자리에 앉는다. 오늘치 성경 통독을 안 했구나. 잘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읽자. 이런. ‘3일 늦음’ 게으름이라는 먼지는 정신을, 기억을 흐리게 만드나 보다. 밀린 이틀 치까지 3일분을 거의 읽을 무렵, ‘딸랑‘. 업체 사장님이 미안해하며 들어오신다. 잠시 후 아내분으로 보이는 동료가 들어오신다. 밤 9시 05분. 서너 시간 족히 걸릴 작업. 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순간이라도 욱해서 더 미안하다. 결제 먼저 하고, 작업 전후 사진자료와 소등, 문단속 등 부탁드리고 탄산수 두 병 드리고 먼저 나왔다.


내일부터 차갑고 깨끗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여름아 드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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