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3/금/맑음
P.M. 8시. 컴퓨터 끄고, 홍보영상 끄고, 음악 끄고, 에어컨 끄고, 불을 끄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복병이다.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으시다. 10분 정도 지났나,
근데 몇 시까지 영업하세요?
평일 저녁 8시까지입니다.
아, 그럼 다음에 다시 와야겠네요?
지금 어디신데요?
매장 앞 차에서 전화하고 있는데…
커다란 창 밖에 차가 한 대 서있다.
그럼 들어오세요~ 왜 전화로 말씀하세요.
내가 몸이 좀 불편해서…
전화를 끊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차문을 빼꼼 여시 더니 활짝 좀 열어달라 신다. 차문을 최대한 열자 ‘머리 조심해요’ 하신다.
승용차 지붕 위 루프박스가 90도로 회전을 시작한다. 운전석 좌측의 스위치를 조작하시더니 버튼을 누르신다. 회전을 마친 루프박스에서 접힌 휠체어가 내려온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75세인 고객분은 14년 전에 복병을 만나셨다. 무슨 사업인지는 못 여쭸지만 부천에서 청주를 매일 오가면서 자주 밤샘을 하면서도 매일 수영, 주말엔 태니스로 건강에도 자신이 있으셨다고. 외쪽팔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생겼는데도 건강을 과신한 탓에 근육이 빠지나 싶어 수영을 더 열심히 하셨다고. 그러던 어느 날 업무차 고속도로 주행 중에 왼쪽 다리에 힘이 풀려서 가까운 톨게이트로 가까스로 빠져나온 다음에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고. 그리고 14년. 두 번 사는 인생인데 민폐가 많은 삶이라고 자책하신다. 침대에도 누워보시고, 마사지체어에도 번갈아 앉아보시는 내내 시간을 물어보신다. 미안해하신다. 괜찮다고, 차가 멋지다고, 휠체어 운전도 베테랑이시라고 주절대면서 아무렇지 않은 채 했다. 아니 아무렇지 않았다. 다행히 몸에 맞는 제품을 정하시고 내일 근처 사는 따님과 계약하러 오시겠다고. 다시 차문을 열고, 루프박스가 90도 돌고 리프트가 내려오고. 도로로 내려가는 길이 걱정돼서 배웅차 지켜보는데 운전은 나만큼 잘하신다.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드신다. 90도로 인사드렸다. 존경의 표현.
건강을 생각 안 하고 일만 해왔다는, 건강을 과신한 덕에 바보처럼 산다고 건강 잘 관리하라는 당부를 내려놓고 가셨다. 아홉 시 반.
서둘러 다시 켠 에어컨과 조명을 끄고 문을 잠그고 차에 오르니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어. 이제 출발해. 반신불수 고객님이 다녀가셨어. 그제야 배가 고프다.
두 시간 숙성된 골뱅이 소면은 때를 놓쳤어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