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잘졌

20240628/금/맑음

by 정썰
#농구 #1on1

아들하고 캐치볼 하는 건 일종의 로망이었다. 어릴 적 지 엄마 닮아서 운동을 싫어하던 아들. 태권도 상담받던 날, 사범님 앞에서 울어버린 녀석. 달릴 때 다리와 팔이 약간씩 엇박자가 나던 녀석. 녀석과 캐치볼이 되던 날 정말 기뻤다. 사촌들이랑 어울려 미니축구, 족구 등을 즐겨할 정도까지 구기운동을 좋아하게 되었다. 평소 둘이서 할 수 있는 운동에는 한계가 있다. 한 때 자전거로 무심천변을 함께 달렸고, 캐치볼을 하고, 김수녕 양궁장 잔디밭에서 축구공으로 패스 연습을 하곤 했다. 아들은 위해서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내가 즐거웠고, 때론 아들이 나랑 놀아준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고딩이 된 아들은 부쩍 농구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이사 온 아파트 단지 지하에 실내 농구장이 있었다. 매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큰돈을 투자할 순 없었다. 당근에서 발에 맞는 S급 실내용 농구화 두 켤레를 구입했고, 농구공은 아내에게 때 써서 새 걸로 하나 장만했다.


몸을 풀고 나면 투바운드로 시작한다. 15점 3세트. 1대 1 7점 넣기 3세트, 마무리는 두 종목 중 하나를 아들이 택했다. 늘 내가 이겼다. 수험생이었던 아들은 체력과 기술 모두 아직 나한테 못 미쳤다. 키는 나보다 조금 크지만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요인은 아니다. 때론 세트 스코어 3대 0. 주고 2:1로 내가 이겼다. 아들을 이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굳이 져줄 이유도 없었다. 분해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실력과 체력도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았다.


쉬는 날이라 봉사활동 끝나고 픽업해 왔다. 저녁에는 체육관이 붐빌 거 같아서 바로 농구장으로 향했다. 동일한 전개. 투바운드는 내가 2:1로 역전승. 이변은 1대 1 7점 먼저 넣기에서 일어났다. 2:1 아들 승. 1:1은 전통적으로 내가 강한 종목이다. 오랜만에 하긴 했지만 질 줄은 몰랐다. 녀석의 드리블, 슛 정확도, 체력이 많이 늘었다. 마지막 종목은 아들이 정했다 10점 단판. 크게 졌다. 승부욕이 강한 편은 아니다. 학창 시절 잠시, 지고는 못 사는 시절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승부에 큰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다 뿐이지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내색을 안 할 뿐, 빨리 지울 뿐. 모르겠다. 맘에 오래 두는 성향을 아주 없애지는 못했으니 끝이 길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긴 했다.


오늘은 정말 즐거웠다. 졌다. 앞으로도 계속 질 거다. 계속 기분 좋을 거다. 이제 한 5년 남았을까? 녀석과의 대결이. 졌잘졌. 졌지만, 잘 졌다. ^^


keyword
이전 25화아름다운 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