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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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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Nov 03. 2022

생(生)의 가운데에서



부서지는 말들이

회색의 가루가 되어 퍼석하게 쌓여간다.

그러면 더 이상 가볍지 않게 된 먼지들이

쿵-하고 사방에 내려앉기 시작한다.

무겁다- 무겁다-

그리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동안

눈앞의 흔들리는 장면들은

먼지를 조금도 옮겨 놓지 못하고 있다.








가루가 된, 단어의 일부였던 그 무엇들이

갈리고 갈려 결국 말단의 색이 되어서는

아무렇지 않게 떨어지고 쌓여간다.







회색의 것 들 에서는

세 번 즈음 죽어간 무언가 들의 소리가 난다.

모든 줄을 끊어 낸 어떤 악기의 소리가 난다.

매일 목격되곤 하는 어느 뒷모습의 냄새가 난다.

그것들을 섞어내어

겨우 솎아낸 영혼은

건조하게 말라가 그림자의 형태를 띠고 있다.








굳이 회색의 가루가 쌓이는 것을

지켜보거나 건드리려 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럼 나의 물음들도

굳어버린 시선들도

곱게 갈려

생의 가운데 포슬포슬 얹어지겠지.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무너지고 또 쌓이고.

물기 스며든 흔한 눈동자는

끝끝내 있을법한 소란을 이렇게나 진득이 피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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