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길목을 걷는다.
겹친 발걸음으로 지나온 길.
그 모습은 낡고 닳아 반투명해져서
공기 중에 거진 흡수되어 버렸다
나는 공기를 눈치채지 못한다.
채도 높은 장면들이 빠르게 번져
길의 빈 곳을 대신 채워나간다
기억을 빨아들인 시야가 묵직하다
돌아보면, 소모된 내 껍데기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앞을 보면, 소모될 내가 온 사방에 만연하다
결국엔 어딜 둘러봐도 길이 보이질 않는 지경이니
애초에 왜 길을 잃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는다
희미해진 발걸음을 깨작이며 몇 번 더 옮겨 놓으니
이미 소원해진 길목이다.
오늘은 눈동자에 덕지덕지 묻은 얼룩들을
그냥 털어내진 못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