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살던 전 주인은 시인이었나 보다. 어쩌다 우편함에 시잡지와 시집이 꽂혀 있다. 동료들이 보낸 것이다. 전주인의 소식을 알 길이 없어서 내가 보고 있다. 하루는 잡지사에 전화를 해서 그가 이 집을 떠났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면 그 출판사에서 잡지가 온다.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고, 콩인 줄 알고 삶아버린 모양이다.
좋은 점이 있다. 가끔 좋은 글을 읽게 된다. 나쁜 점이 있다. 전주인은 친구가 많았는지 책이 밀려서 때때로 버리는데 그게 꽤 무겁다.
일본에 간 적이 있다. 이나바 씨 댁에서 머물렀다. 어쩌다 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일본에도 시인이 있나요?”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도쿄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스스로 시집을 내고 자기들끼리 돌려본다고 하더군요.”
나는 몇몇의 일본 시인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요시노 히로시의 시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고도 이야기했고 일본의 하이쿠 시인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이쿠 시인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바쇼를 아주 좋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바쇼의 하이쿠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시게
나 역시 외로우니
이 가을 저녁
며칠 후 도쿄에 볼 일이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그가 물어왔다. 나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으므로 그의 차에 올라탔다. 차는 렌트한 것이었다. 차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차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필요할 때만 차를 빌려서 쓴다고 했다. 도쿄는 요코하마에서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
“근데 어딜 가는 거죠?”
“친척을 좀 만나러 갑니다.”
그가 차를 세우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거기엔 ‘바쇼’라고 적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쇼 기념관’이었다. 내가 놀라자 그가 말했다.
“바쇼는 우리 조상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왜 말하지 않았죠?”
“일본인들은 자랑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는 스스로 하지 않는 편입니다. 바쇼를 안다고 해서 무척 놀랐습니다. 그래서 여기 데리고 온 것입니다.”
바쇼 기념관을 구경한 후 뒤편에 있는 강을 따라 우리는 걸었다. 군데군데 하이쿠 시인들의 하이쿠 비석이 서 있었다. 나는 그로부터 하이쿠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쇼는 매우 발걸음이 빨랐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닌자가 아니었을까 하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바쇼보다 잇싸를 더 좋아합니다. 잇싸는 우리 어머니의 고향 사람이지요. 그는 복잡한 사람입니다.”
“뭐가 복잡하다는 거죠?”
“결혼을 여러 번 했습니다.”
나는 그 중 한 번의 결혼을 알고 있었다. 무척이나 어린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녀를 얼마나 귀여워하는지 알 수 있는 하이쿠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체로 불행한 사람이었다. 자식을 잃었고 말년에 살던 집이 불타기도 했다.
이 건 그가 남긴 하이쿠인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벼룩, 너에게도 밤은 역시 길겠지
밤은 무척 외로울 거야
지금도 여전히 일본에는 하이쿠가 살아 있다고 했다. 새해가 되면 친한 사람들끼리 하이쿠가 적힌 엽서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바쇼에 대해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더 없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바쇼가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기념관이 서 있지만 사실 바쇼가 정확히 어디서 살았는지는 잘 모릅니다. 닌자들은 언제나 잠자리를 옮겨 다녔고 잇싸처럼 그의 집이 불에 탄 적이 있습니다. 바쇼의 삶에 대해선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은데 바쇼를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 그의 미스터리한 삶이 오히려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