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오던 비가 그친 토요일이었다. 경의중앙선 지평행 열차 안은 코로나 시기임에도 사람들로 꽉 찼다. 열차 안을 한번 훑어본다. 배낭을 멘 사람이 절반쯤 된다. 대개는 중년들이다.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자란 뒤 이제야 자신을 위한 시간을 찾는 아름다운 나이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엄마, 20대로 보이는 여성과 남성, 스스로의 몸을 가누기에 힘겨워 보이는 노년들이 열차 안의 풍경을 다양하게 한다. 덕소를 지나자 타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운길산과 양수역을 지나니 빈자리가 슬금슬금 나온다. 차창 밖 산허리를 부드럽게 감고 있는 구름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즐기다 보니 벌써 용문역이다.
역 앞 공터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양평 물소리길 6코스 은행나무길로 들어섰다. 야외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즐거움이 여기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충분히 보상해주고 남는다.
들판은 가을이 완연하다. 벼는 익어가고 일부는 거둬졌으며 나무는 수분을 날리며 물이 들기 시작했다.
도로 옆 편편하게 손질된 황토밭에서 서너 명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심고 있다. 옛날에는 허리를 꼬부리며 엎드려 밭에 작물을 심었지만 요새는 모종이식기라는 편리한 기구가 있어 서서 꾹꾹 모종을 찔러 넣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소나무 묘목이었다. 주위에 다른 묘목도 자라고 있다. 육묘장이다.
우리나라 희귀‧ 특산식물 복원을 위한 국립수목원 ‘유용식물 증식센터’가 양평에 있고, ‘용문양묘사업소’가 이곳 다문리에 있다. 육묘장의 묘목들이 건강한 산림자원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걸음을 계속한다.
자연은 귀를 열고 마음을 연 사람에게 참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걸을 때는 주로 침묵하며 걷는다. 초록도 여러 빛깔이고 단풍이 든다고 다 같은 노랑 빨강이 아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식물도 마찬가지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과 꽃들이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어울리고 땅의 생김새와 지형이 저마다 달라 자연에서의 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다.
냇물 바닥의 검은색 돌이 물빛을 검게 보이게 해서 흑천이라 불리는 냇가에서 흰뺨검둥오리들이 한가롭게 모이를 쪼고 있다. 따스한 가을볕과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 구름을 품은 하늘이 내려앉은 물가에 갈대가 일렁거린다. 냇둑 언저리에는 붉은 개여뀌, 명아자여뀌들이 유난히 많다. 작고 소박한 꽃이 모여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꽃밭이 되었다. 빠르게 지나치면 느낄 수 없는 평온이 발끝에 머문다.
누렇게 변한 들깨는 어서 빨리 거두어 달라고 씨앗을 품은 송이가 입을 살짝 벌리고 있다. 어떤 밭은 기다리다 자지러져 까맣게 변했다. 김장철에 맞춰 장년기에 접어든 무와 배추, 주인의 건강한 밥상을 위해 자라는 쌈채들, 아직도 푸른빛이 성성한 고추밭과 희나리가 많은 고추밭, 순을 걷어내며 캐다가 만 고구마밭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으니 벌써 용문산 관광단지 입구다.
늦은 점심을 먹고 신라시대 창건된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십 년 전쯤 가을에 이곳에 왔었다. 그때는 죽어간다고 느꼈던 은행나무가 예전보다 더 풍성해졌다. 밑동의 가지는 땅바닥에 닿을 듯하고 누르스름하게 익은 열매는 바닥에 깔린 검은 부직포 위에 질펀하게 누웠다. 나무 위에도 많은 열매가 댕글댕글 매달려 있다. 이 은행나무 한 그루에서 일 년에 350kg가량의 열매를 얻는다고 한다. 천년이 넘게 생명을 잇고 지금도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의 부지런함이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눈을 뜨면 하루가 가고 어영부영 일주일 한 달이 후딱 가버린다. 내가 보내는 시간 중에 수확을 거둘만한 일이 있기나 할까? 천백 년 전의 씨앗 하나가 오랜 기간 저토록 풍성한 결실을 맺는데 나의 짧은 시간은 별 의미 없이 흐른다고 생각하니 약간 서글퍼진다. 나도 의미 있는 씨앗 하나 거두고 싶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다. 무엇을 하기에 절대로 늦은 때는 없다. 선택과 집중으로 하고 싶은 것 하나에 공을 들여보자. 그리고 십년 뒤 다시 이곳에 와서 나만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직도 정정한 거목과 작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