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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Nov 17. 2021

숨 좀 쉽시다

지난 목요일 친구와 둘이 평화누리길 1코스를 걸었다. 김포 대명항에서 문수산성 남문까지 약 14km, 강화와 김포를 가르는 염하강을 둘러싼 철책과 함께 걷는 길인데 우리는 거꾸로 문수산성에서부터 시작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는 미처 거두지 못한 볏짚이 논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란 고들빼기 꽃과 서양 민들레꽃, 보랏빛 제비꽃이 한 차례 예초를 끝낸 논둑의 새로 돋은 여린 풀 사이에서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희끗한 잎사귀를 훈장처럼 단 서리 맞은 배추와 푸른 어깨를 드러낸 김장용 무는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염하강 잿빛 뻘에 무리 지어 있던 쇠기러기가 ‘꺼이, 꺼이’ 소리를 내며 한바탕 날아오르더니 파란 하늘에 검은 점이 되어 강 건너 강화도로 사라진다. 이 부근에 서식한다는 멸종 위기종 저어새는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반쯤은 바닥에 뒹굴고 절반은 나무에 매달린 단풍의 붉은 기운에 취하며 걷는다. 쇄암리 전망대 쉼터를 지나 광성 나루터 쪽으로 가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노년의 남성이 발걸음을 멈춘다. 통영에서 새벽에 올라왔다는 그는 자신이 완주했던 길 이름을 늘어놓았다. 대충 합쳐도 2000km가 넘었다. 대단하다고 감탄하자 어깨를 으쓱하며 가던 길을 간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자기가 걷던 길의 완주를 목표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사람이 사는 곳에 길이 먼저 생겼고 그 길을 이어 붙여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다 걷고 말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여기 찔끔 저기 찔끔 걷는 자신을 변명한다. 그저 걷고 싶은 길만 걸을 뿐이라면서.


강화해협의 무인도인 부래도 부근에는 상수리나무 군락지가 있다. 봄에 어린싹을 틔우고 여름에 무성한 푸름을 자랑하다가 가을바람에 땅에 떨어져 부숭부숭 모여 있는 모습이 정겹다. 뾰족한 톱니를 가진 타원형의 마른 잎에서 윤기가 돈다. 바사삭바사삭 구르는 낙엽 소리가 저들끼리 나누는 대화처럼 들린다. 강바람 이는 언덕의 푹신한 흙에 누워 윤슬이 이는 강물을 보며 볕뉘를 쬐는 나뭇잎을 보자 그제 일이 생각났다.   

   

그날 서울에 가을비가 내렸다. 모임을 끝내고 밖에 나서자 길바닥에 낙엽이 뒹굴었다. 물기 젖은 노면과 물기를 품은 낙엽은 발걸음을 조심하게 한다. 발바닥에 힘을 주며 이 낙엽들, 참 운도 없다고 혼자 중얼거렸었다. 도회의 대로변에 살면서 온갖 매연을 견디고, 죽어서는 차가운 보도블록에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다가 곧장 어디론가 사라질 잎들이 안쓰러웠다. 운이 좋으면 퇴비가 되어 낯선 농가로 팔려 가거나 아니면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질 것이다.

낙엽에게도 부모 찬스라는 게 있다면 그들은 부모를 잘못 만난 셈이다.

도심의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우리의 입장이지 나무의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나무라면 이곳처럼 공기 좋고 풍광 좋은 곳에서 끼리끼리 어울리며 지내다가 죽은 뒤에는, 땅속 미생물의 도움으로 발효되어 자신을 키우고 거둔 토양에 거름이 되는 선순환의 바퀴에 올라타기를 주저하지 않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좁은 도로변 화단 한쪽에서 쓸쓸하게 가로등 불빛을 받고 있는 그들을 봤다. 커다란 비닐 자루에 수북하게 담긴 낙엽이 온몸을 비비 꼬고 꿈틀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발 숨 좀 쉬자는 낙엽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낮에 봤던 강변 언덕의 낙엽이 다시 떠오른다. 마음껏 흩날리며 공간을 휘젓던 그 자유로움을  폐쇄된 공간에 갇힌 저들은 짐작이나 할까.

무심한 척 말끔히 손질된 거리를 또닥또닥 걷는데 마음 한구석이 살짝 저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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