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밥 잘 나오는 회사는 불가능
최근 엔데믹 단계에 돌입하면서 재택근무를 축소하는 기업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재택근무 기간 동안 직원들의 생산성이 저하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재택 전후를 비교했을 때 업무 퍼포먼스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은 관련 소식을 들을 때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여러 가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실제로 생산성이 저하된 것이 맞을까?
만약 그렇다면 왜 저하되었을까?
어떤 특성을 가진 업무가 재택근무에 적절할까?
어떤 기업 문화를 갖춘 회사가 재택근무를 잘 유지할까?
마지막 질문 '어떤 기업 문화를 갖춘 회사가 재택근무를 잘 유지할까?'에 대해서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를 기준으로 나름대로의 답을 내려볼 수 있었다. (현재 근무 중인 회사는 2020년 초부터 재택근무를 실시하였고 2023년 현재까지도 조건 없는 풀재택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
오전에 커피 한 잔, 점심시간에 만나서 수다, 저녁에는 맥주 한 잔. 이런 사회적인 인터랙션에 미련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야 재택 체제가 잘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윗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얼굴 좀 보고 친해져야 일이 굴러가지!"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얼굴 보고 친해진다고 안 굴러갈 일이 잘 굴러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물론 집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해서 해서 꼭 개인주의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체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오피스에서 일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회적인 인터랙션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내적인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집에서 혼자 일하기'를 좋아한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2. 성장 욕구가 많은 개인들의 집단
IT 업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이직을 자주 하는 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특성상, 그에 맞춰 자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고 다양한 과제들을 경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주어진 일만 묵묵하게 해내며 차근차근 승진길을 밟는 시스템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점프할 수 있는 기회가 곳곳에 있는 환경이라 그런지 성장 욕구가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소위 '꿀 빠는' 자리는 싫어하고 도적적인 과제들을 많이 해내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그 결과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들은 물경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성과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언제 어디에서 일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에 대한 동기가 회사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도 출근 도장만 찍고 침대에 누워있고 미팅은 들어가지도 않고 대충 일하는 척만 하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3. 근무 시간에 유연성을 적용해 본 집단
요즘은 유연 근무제라고 해서 정해진 시간(ex. 6AM-10PM) 내에서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업무 하는 곳도 많다. 나는 이렇게 시간에 대한 틀을 깨 본 집단이 공간적인 제약에 대한 틀도 깨기 쉽다고 생각했다.
근무 환경 유연성이란 결국 개인이 가장 효율적으로 업무 할 수 있도록 회사가 자율적인 권한을 직원들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자율은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인데 이러한 권한을 직원들에게 준다는 것은 회사가 직원들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음을 신뢰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재택근무는 이러한 유연성을 시간적 환경에서 공간적 환경으로 한 단계 더 확장한 형태이다. 시간에 대한 통제를 잘한다고 해서 공간에 대한 통제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일단 한 번 유연성을 경험해 본 회사가 공간적 유연성을 시행하는 것에 대한 장벽이 낮고 고로 재택근무에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성장 욕구가 강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업무 공간에 대한 자율성이 부여할 배포가 있는 회사!
가 재택근무를 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나저러나 재택근무의 시행/지속 여부는 결국 회사와 직원 간의 신뢰 문제이다. 회사는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인성을 갖춘 직원을 뽑고 그런 직원들에게 최고의 생산성을 위한 환경을 마련해 주고, 직원들은 그러한 환경 하에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업무를 하고. 이런 선순환이 지속된다면 재택근무가 영원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제발 영원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