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진 자리에,

2019년 4월 15일 월요일의 지영

by 이수댁
관악산 둘레길 조망대에서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배가 고파졌다. 비 내리고 강풍 불면 꽃이 다 질까 봐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동네 곳곳을 산책하다... 어쩌다 보니 관악산 둘레길 조망대까지 올라갔다. 우리 동네 곳곳의 봄을 눈에 담을 수 있어 행복한 주말이었다. 흐렸던 하늘에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침 밥상을 차렸다.


일요일에는 천둥을 동반한 강풍이 분다더니, 봄비가 약하게 내리다가 그쳤다. 하늘은 흐리고, 바람은 쌀쌀했지만 그래도 봄이었다. 일기예보는 자주 양치기 소년이 되어 뒤통수를 친다. 그래도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으니...



새삼스레 눈이 가는 건 꽃의 행보였다. 바람이 불면 금세 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간다. 연약해 보이는 벚꽃잎들이 바람이 불면 우수수 흩날려 빈 가지가 될 줄 알았다. 아쉬워도 꽃이 진 가지에 연두색 잎사귀들이 자라나 마음을 밝게 비쳐줄 거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바람이 불어 봄비에 꽃비가 더해지긴 했으나, 생각했던 것만큼 꽃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지에 꼭 붙어있는 꽃들을 보며 의외로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와 순서에 따라 피고 지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걱정이 많은 건 아닌지, 조급한 마음을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거리를 두고 꽃들을 지켜본다. 세상 모든 것들 사이에 간격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내가 조바심을 낸다한들 꽃이 더 빨리 피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해도 꽃은 더 오래 버티지 않을 것이다. 그냥 그들의 속도에 맞게 오고 가는 것이다.

꽃을 보며 모든 것에는 때가 있음을 느낀다. 지금 즐기지 않으면 흘러갈 것들에 나는 온 마음을 내어주며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었다. 덕분에 행복했다. 새삼 우리 동네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구석구석을 산책했다. 짧게 피다 지는 걸 안다고, 이제 어서 가라고 손짓해도 조용히 그들의 몫을 다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갈 것이다. 자연스럽게 될 일이다.



출근길에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니 주말 사이에 눈에 띌 정도로 잎사귀가 많이 자랐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은 오고 간다. 비밀처럼 흐르는 계절 속에서 나도 자라고 있을까? 피고, 지며 성숙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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