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던 날.>이 제목이 될 만큼 이런 날은 일 년에, 아니 내 인생에 드문 날이다.
금요일에도 불금을 즐기기보다 평소처럼 잠들고, 주말에도 평소처럼 일어나 청소를 하든, 사람을 만나든, 취미생활을 하든 바지런히 움직였다. 나란 인간은 움직여야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 주말엔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이틀을 꼬박 보냈다. 자기 전 스마트폰에 찍힌 걸음수는 고작 70보. 낯선 숫자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충분한 휴식시간이 다시 1만보의 일상으로 거뜬히 나를 옮겨주었다.
지난 주말엔 업무를 하고, 어학시험을 보고, 익산 시댁에 다녀오면서 긴장을 풀 시간이 없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주중에는 인천으로 외근이 있어 3일 동안 이른 아침부터 운전해서 이동했다. 네비를 잘 못 보는 나에게 운전은 아직 힘든 일이다. 게다가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종일 외부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강행군을 하다 보니 감기 기운이 점점 깊어졌다.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선배가 감기 초기에 수액을 맞으면 금방 낫는다고 말씀해주셨다. 스스로 병원에 갈 생각도 못했는데,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그때 조금 더 몸을 돌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건강관리도 실력이니까 쉬는 것도 의지를 갖고 쉬고,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이틀 동안 집에서 푹 쉬면 분명히 월요일엔 컨디션을 되찾을 거라고 북돋아줬다.
집에서도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아침 차려먹고, 집안일하고, 책을 좀 읽다 보니 반나절이 후딱 가있었다. 토요일에는 침대에 붙어 책 읽기에 집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가장 원하던 시간이었다. 오롯이 책을 볼 수 있는 시간.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찾기 힘든 시간이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2020>를 읽으며 요즘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내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내가 모르고 있던 유용한 사이트와 핫한 장소들은 표시해두었다. 시간이 날 때 틈틈이 방문해봐야지.
그리고 좋아하는 팟캐스트도 마음껏 들었다. 시사경제를 다루는 <밀레니얼의 시사 친구, 듣똑라>, <뉴스 래빗-실험적 뉴스 생활>을 보면서 시사 이슈에 귀 기울여보았다. 그리고 자기 전에 자주 듣던 <월간 정여울>도 들었다. 정여울 작가님께서는 최근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라는 책을 내셨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어떻게 심리학을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를 진행하셨는데, 그중에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 있었다.
현대인의 번아웃 증후군은 처음에는 사명감과 열정으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꼭 필요한데, 혼자 있을 때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거나 작업을 한다면 물리적으로는 혼자 있어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상황과 같다고 하셨다. 진정한 휴식을 취하려면 편안함을 느끼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마음을 둘 수 있는 자기만의 물건 또는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다. 쉬면서도 못 나간 모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카톡을 하거나 신경 쓰는 일, 다가오는 행사는 어떻게 준비할지 업무를 걱정하는 일 등 나는 쉬면서도 마음이 참 바빴다. 그러면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더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쉬어보기로 했다. 이렇듯 쉬는 일도 쉽지 않다. 외부에 에너지를 쏟는 일 못지않게 자신에게 에너지를 집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일요일 저녁까지 집에서 꼼짝 않고 있는 날 보고 남편이 기특해했다. 남편도 이게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커튼과 블라인드를 맞추기 위해 남편과 동네에 있는 커튼집에 갔다. 따뜻한 이불과 카펫, 아늑한 느낌의 커튼과 심플한 색상의 블라인드를 맞추고 나니 앞으로 집이 더욱 좋아질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시즌이 끝나가는 샤인 머스캣과 아삭아삭한 엔비사과를 사서 남편과 나눠먹었다. 비싼 과일값에 늘 지나치기만 하던 샤인 머스캣을 과일가게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신중히 골랐다. 겉모양은 청포도인데 망고 맛이 나니 신기했다. 그리고 사과를 좋아하는 나는 일반 사과도 충분히 맛있게 먹지만, 이번엔 맛과 식감이 더 뛰어난 엔비사과를 사봤다. 평소에 못 먹어보던 과일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던 주말이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덧. 16일 토요일에 남편이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며 집으로 어항을 가져왔다. 그 안에 구피가 여러 마리 들어있었다. 우리 집에 처음 온 동물 친구들이 낯설지만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항을 꾸미고, 바라보는 것도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힐링이 되는 것 같은데... 예쁘게 꾸며서 다음 편에서 공유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