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CDRI(기업분쟁연구소) 랩소디
마논트로포 1화 보기
https://brunch.co.kr/@brunchflgu/1093
미스터 왕필은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골라 틀어놓고는 입맛을 다시며 산통에서 산가지를 꺼내 주역점 칠 준비를 했다.
오늘의 BGM(Back Ground Music)은 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최 대표는 눈살을 찌푸렸다.
“볼륨 좀 줄이면 안 돼?“
“영험한 기를 받아야지. 오늘은 프레디 머큐리 옹과 수많은 팬들의 기(氣)를 한꺼번에 받아볼게.”
미스터 왕필은 싱긋이 웃었다.
왕필의 주역점에 신기(神氣)를 내리는 이는 항상 달랐다. 이번처럼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지만 비욘세나 조용필이 등장할 때도 있다. 뛰어난 아티스트들은 원래 사람들의 기를 빨아들이는 뱀파이어 같은 존재라 그들의 기운에 기대 주역점을 치면 적중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왕필의 논리. 또 한가지 전제는 반드시 그들의 라이브 앨범을 틀어놓아야 한다는 것. 라이브 앨범이라야 팬들의 기운이 더해져 강력한 기운을 받는다나 뭐라나.
왕필 유튜브 목록에는 아티스트 별로 다양한 라이브앨범 영상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산가지를 양손으로 옮겨 쥐면서 계속 덜어내던 왕필이 산가지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점괘 나왔어. 허.. 감위수(坎爲水)괘라.”
“뭐야, 안 좋은 거야?”
최 대표는 ‘내가 어쩌다 이런 샤머니즘에 쩔쩔 매는 사람이 됐지?’라며 한심한 생각이 들다가도 미스터 왕필을 강력 추천하고 잘 보살펴 달라는 권 회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CDRI(기업분쟁연구소)의 가장 큰 고객인 권 회장이기에.
물론 한 번씩 조언을 구하면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듯이 적중을 하곤 하니 미스터 왕필의 점괘에 솔깃하긴 했다.
주역에는 총 64괘가 있다는 것쯤은 최대표도 알고 있다. 그런데 4대 난괘라니. 뭔가 엄청 안 좋다는 느낌이 확 밀려온다.
“뭐,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긴 한데, 택수곤, 수뢰둔, 감위수, 수산건, 이 네가지 괘를 두고 4대 난괘라고 하지. 그만큼 힘든 상황이라는 거야.”
“그럼 무조건 안 좋은 건가?”
“아냐, 좀 더 기다려봐. 감위수괘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변효(變爻)가 좋으면 괜찮을 수도 있으니. 보자. 변효가 1, 3효구나. 그 효사(爻辭)가...”
주역점괘는 6개의 작대기로 되어 있고, 그 작대기 중 이번에 점을 칠 때 선택된 작대기가 변효다. 제일 아래 작대기(1효)와 밑에서 세 번째 작대기(3효)가 이번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했다.
왕필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1효 효사는 ‘겹겹이 쌓인 구덩이 속에 들어가면 흉(凶)하다.’, 3효 효사는 ‘오거나 가거나 험하고 험난하다. 쓰지 말라.’. 이거 아무리 좋게 봐줄려 해도 안되겠는걸. 이 사건은 시작하면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고 결과도 안 좋겠는데?”
겹겹이 쌓인 구덩이라.
최대표는 아까 의뢰인이 말하던 사건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 사건에서 승소하려면 돌파해야 할 큰 난관이 최소한 5개는 된다. 겹겹이 쌓인 구덩이라는 말이 묘하게 오버랩됐다. 이러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판단이 안 설 때 미스터 왕필의 한마디는 확실히 도움이 됐다.
“최종 판단은 최대표가 알아서 하는 거니까 뭐. 끝끝내 마음이 시키면 그렇게 가도 되고.”
이런 무책임한 왕필.
도대체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저 마스크. 신비주의 컨셉의 결정체. 언젠가는 양파를 까듯 그 실체를 파헤쳐야지.
최대표는 이 사건은 접기로 마음먹었다.
뭐라고 거절의 말을 해야 하나. ‘주역점을 쳤더니 4대 난괘 중 하나가 나와서 수임 못합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
잠시나마 잭팟의 유혹에 휘둘렸던 마음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3회로 이어집니다)
3회 : https://brunch.co.kr/@brunchflgu/1095
https://www.facebook.com/cdri119/
왕필(王弼)
23세에 요절한 중국 위(魏)나라의 학자.
노자와 주역을 어린 나이에 풀이한 것으로 유명한 기인(奇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