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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Mar 04. 2017

연작소설 : 마논트로포 4화

부제 : CDRI(기업분쟁연구소) 랩소디

* 지난 회 보기

1화 https://brunch.co.kr/@brunchflgu/1093

2화  https://brunch.co.kr/@brunchflgu/1094

3화 https://brunch.co.kr/@brunchflgu/1095



박 변호사는 성욱씨에게 급히 요청해서 R사의 정관을 받아보았다. 정관을 몇 번 읽어봐도 무엇이 문제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하는 수 없이 1년 선배 이강윤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변호사는  박 변호사보다 기수상(基數上)으로는 1년 선배지만 나이가 같아 박 변호사가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다.      


박 : 이 변호사님. 이사 임기가 3년인데 1년 만에 해임됐고, 해임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상법상 당연히 손해배상청구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 : 박 변호사님. 이사 임기가 상법상 어떻게 규정되어 있지요?     


박 : 3년 아닌가요?     

이 : 정확하게는 이렇습니다. ‘이사의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상법 제383조 제2항.     


박 : 그 말이 그 말 아닌가요?     

이 : 엄밀히 말하면 다르죠. 상법 규정에는 ‘이사의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임기는 3년일 수도 있고, 2년이나 1년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론상.     


박 : 하지만 대부분 3년이잖아요?     

이 : 그렇긴 하죠. 대부분의 회사는 회사의 헌법이라고 하는 ‘정관(定款)’에 이사의 임기를 정해둡니다. 보통 이렇게 규정하죠. ‘이사의 임기는 3년으로 한다.’ 이렇게 정관에 되어 있으면, 상법과 정관의 규정을 종합해서 ‘이 회사의 이사 임기는 3년이다’라고 말할 수 있죠.     


순간 박 이사는 짚이는 게 있어 R사의 정관 중 이사의 임기부분을 펼쳐봤다.     


정관 제17조 : 회사의 이사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뭐야 이게? 회사 정관상의 이사 임기 규정이 상법상의 규정과 같았다.     




박 : 그럼 이 변호사님, R사 정관에 따른다면 이사 임기는 어떻게 되는 건지요? 3년이 아닌가요?     

이 : 정관 규정 그대로입니다. ‘3년’이라고 특정할 수 없습니다. 그냥 ‘3년을 초과하지 않는 기간’이 R사 이사의 임기입니다.     


박 : 그럼 1년 만에 해임되도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요?     

이 : 이사가 중도해임된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상법규정을 다시 볼까요?     


385조 (해임) 
① 이사는 언제든지 제434조의 규정에 의한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의 임기를 정한 경우에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임기만료 전에 이를 해임한 때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보다시피 손해배상의 전제는 ‘임기가 정해져 있고’, ‘그 임기 만료 전에 해임된 때’라는 요건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R사의 경우는 명확한 이사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단순히 3년을 초과할 수 없는 기간으로만 되어 있으니까요. 1년 만에 해임했다고 해서 ‘임기 만료 전에 해임한 것’은 아닌 거죠.      


박 변호사는 황당했다. ‘뭐래, 이거. 말장난도 아니고.’

법이란 게 상식에 부합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너무 형식론적인 해석일 뿐만 아니라 이사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거 아닌가?


박 변호사는 성욱씨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여러 논리를 생각해 봤다.     

이 변호사는 그런 박 변호사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출력한 종이를 건네 줬다. 대법원 판결 요지였다.     


대법원 2001. 6. 15. 선고 2001다23928 판결     

상법 제385조 제1항 에 의하면 "이사는 언제든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로 해임할 수 있으나, 이사의 임기를 정한 경우에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임기만료 전에 이를 해임한 때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 때 이사의 임기를 정한 경우라 함은 정관 또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임기를 정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고,

이사의 임기를 정하지 않은 때에는 이사의 임기의 최장기인 3년을 경과하지 않는 동안에 해임되더라도 그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할 것이고, 회사의 정관에서 상법 제383조 제2항 과 동일하게 "이사의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것이 이사의 임기를 3년으로 정하는 취지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내용을 읽어보니 바로 R사에 적용될 수 있는 판례였다.     


최 대표변호사는 법률상담을 가벼이 하지 말라고 항상 강조했다.      


1) 상담 후 바로 즉답을 줄만큼 확실한 사안이 아니면 즉답을 주지 말고 리서치를 한 후 의뢰인에게 답을 줄 것. A라고 말했다가 B로 결론을 바꾸는 것은 변호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기에.     

2) 일단 관련되는 법조문과 판례를 전부 찾아볼 것. 특히 판례는 수시로 바뀌므로 가장 최신 판례에 근거한 답을 찾을 것.     


“하필 유갈량 변호사님 의뢰인 건인데 잘못 안내했으니 골치 아프실 것 같아요.” 이 변호사는 진정 걱정된다는 표정을 했다.     


‘아, 내가 이러고도 변호사 맞나.’ 박 변호사는 밀려드는 자괴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대체 방법이 없는 건가. 하루 하루가 시트콤의 연속이다. 박 변호사는 머리를 쥐어 박았다.     






(5회로 이어집니다)  

5회 : https://brunch.co.kr/@brunchflgu/1097


작성 : 기업분쟁연구소 대표변호사 조 우 성

https://www.facebook.com/cdri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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