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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un 12. 2022

삶의 무심함. 천지불인(天地不仁)

                               

[단상 – 삶의 무심함. 천지불인(天地不仁)]



#1


2008년경, 당시 내가 근무하던 로펌의 선배 변호사님이 교통사고로 황망히 돌아가셨다. 정말 대단한 분이셨는데 너무도 얼토당토 않게 사고를 당하셨다. 빈소에서 대표 변호사님이 혼잣말처럼 “천지불인이야... 천지불인...”이라 말씀하셨다. 그때 처음 이 말을 들었다.


#2


그로부터 몇 년 뒤 공부를 하다 ‘천지불인’이라는 말이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것임을 알았다.


‘天地不仁, 以萬物而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천지는 어질지 않으니 만물을 짚강아지처럼 여기고,

성인은 어질지 않으니 백성을 짚강아지처럼 여긴다.‘


여기서 짚강아지는 제사 때 쓰이는 것인데, 제사가 끝나고 나면 그냥 버려지는 것으로 하찮은 것을 의미한다.


#3


천지가 어질지 않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정통한 해석은 ‘세상 천지는 그냥 무심하다’는 것이다. 세상 천지는 나의 삶과는 무관하게 그대로 진행한다는 의미다.

순자의 천론(天論)편에 보면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해서 하늘이 겨울을 거둬가는 법은 결코 없다’는 말이 나오는데 일맥상통한다.


#4


보통 우리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인공이므로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극복할 것이라고 믿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는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웬만해서 죽지 않으니까.


이런 사고방식이 깔려 있으니 TV에서 엄청난 사건, 사고를 보더라도 ‘설마 내게 저런 일이 발생하랴’라고 생각한다. 불의의 엄청난 일을 당하고 나면 이 말부터 나온다. ‘아니, 어찌 내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어찌하여...’


#5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주인공도 아니다. 세상을 주관하는 신 또는 천지의 관점에서 볼 때 ‘나’라는 존재는 그냥 짚강아지에 불과하다. 게임식으로 표현하면 NPC(Non player character ;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는 배경으로 존재하는 캐릭터)에 불과하다.


#6


절대 내게는 발생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말 소중한 내 것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언론에 나오는 엄청난 일들이 과연 나에게는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왜 내게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라고 한탄하는 마음이 들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고, 내가 그런 불행을 모두 피해가리라는 보장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7


작년 가을과 올 봄에 일련의 큰 일들을 겪으면서 새삼 천지불인을 많이 되뇌었다. 세상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다 정말 세게 두드려 맞은 느낌.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찌그러들 수 있으며, 내 소중한 사람이 불의의 일로 얼마든지 떠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8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것과는 좀 더 차원이 다른 자각이 들었다. 정말 인생이란 것은 냉정하면서도 준엄하며, 그 어떤 일도 내게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하루 하루를 조심스레 ‘얇은 얼음을 디디는 마음(여리박빙)’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각을 하게 됐다.


‘설마 내게 그런 일이...’는 오만한 생각이다. 그 어떤 나쁜 일이든 얼마든지 내게 일어날 수 있다. 천지는 나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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