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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Feb 16. 2016

러셀의 칠면조 : 경험론의 위험성

조우성 변호사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과거의 경험에 근거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야 말로 이성을 가진 인간에게 기대되는 행동양식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경험적 예측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Jonn은 시장에서 칠면조 한 마리를 사왔다. 칠면조는 두려웠다. 이 인간이 나를 어떻게 하지는 않을까?

아침 9시가 되자 Jonn은 종을 쳤다. 칠면조가 돌아보니 Jonn이 손짓한다. 뭐지? 나를 유인해서 죽이려는 건가? 


Jonn은 웃으며 먹이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칠면조에게 보여준다. 칠면조는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간다. 최대한 경계하며 먹이를 먹는다. Jonn은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그 다음날 아침 9시 Jonn은 종을 쳤다. 칠면조는 어제보다 용기를 가지고 살금살금 Jonn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Jonn은 환하게 웃으며 먹이 바구니를 내놓았다.

1주일, 한 달, 두 달, 여섯 달.


Jonn의 행동은 변함이 없다. 매일 아침 9시만 되면 종을 쳤고, 칠면조는 아무런 의심 없이 달려가서 편안하게 먹이를 먹었다.


1년째 되는 날 아침, 칠면조는 Jonn의 종소리를 듣고 여느 날과 같이 그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앗! 바구니에는 먹이가 없다. 순간 뒤에서 ‘슛’하는 소리가 들렸다. Jonn이 큰 칼로 칠면조의 목을 내리치는 소리였다. 다음날 칠면조는 Jonn 가족의 추수감사절 파티상 메인 메뉴로 올라갔다.     





위 사례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의 ‘The problems of philosophy’에 나오는 ‘닭의 예화’를 칠면조로 약간 비틀어 본 것이다. 러셀은 ‘경험론’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그 특유의 위트로 위와 같이 풀어냈다.     




칠면조는 하루 하루 축적되는 경험 속에서, ‘Jonn은 아침 9시에 먹이를 준다’는 것을 하나의 법칙처럼 믿었고 그 법칙에 따라 행동했다. 하지만 칠면조에게 닥친 결과는 끔찍했다. 


사실 Jonn은 시장에서 칠면조를 사올 때부터 1년 동안 열심히 키운 다음 추수감사절 파티에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Jonn의 계획이요 디자인이었다. 칠면조는 자신이 경험하는 범위 내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경험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경험 그 자체’ 보다 ‘경험의 질’이 더 중요하다. 그 경험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Jonn이 매일 먹이를 준다는 사실’ 그 자체에 머물 것이 아니라 ‘왜 먹이를 주는지’ 파악해보아야 한다. 나아가 이웃에 있는 다른 동물들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과거에 나 말고 다른 칠면조가 없었는지, 그리고 그 칠면조는 어떻게 되었는지. 


칠면조가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주어지는 먹이는
충분히 안락하고 달콤했기에
굳이 다른 생각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러셀은 Jonn이 처음부터 칠면조를 추수감사절에 사용할 것이라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상정했다. 그런데 다른 경우도 생각해 보자.     


Jonn은 정말 칠면조를 사랑했다. 가능한 오랜 기간 칠면조와 같이 행복하게 살고자 했다.     


그런데...     


1) Jonn이 친구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결국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무엇이든 팔아치워야 했다. 도축업자가 칠면조를 비싼 값에 쳐주기로 했다. Jonn은 눈물을 머금고 도축업자에게 칠면조를 넘겼다.     


2) 갑자기 Jonn의 마을에 조류독감(AI)이 번졌다. 당국은 모든 조류 가축에 대한 살처분(殺處分)을 지시했다. 관청의 감독관들이 들이 닥쳐 칠면조를 살처분하고 구덩이에 파묻었다.     




위 2가지 외에도 칠면조의 과거 행복했던 경험(Jonn이 매일같이 음식을 주던 경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심지어 Jonn조차 통제할 수 없는 그런 돌발사태들이...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는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건 아니다. 내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충성을 다했는데.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단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보다 더 딱한 사정의 사람들도 짐을 싸고 있다.

정말 화가 난다. 욕이라도 해주고 싶다. 그런데...  경영자조차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는 걸 보니 누구를 향해 어떤 욕을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선다.     

어김없이 월급날이면 월급이 입금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직위와 연봉이 올라가는, 그런 예측 시스템이 붕괴되어 간다.     




초연결(hyper networking)시대라고들 한다. 세상 모든 것들이 얽혀 있다는.

꽤 멋있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리스크가 지구를 돌고 돌아 나에게도 미칠 수 있다는 리스크의 초연결이 반갑지 않은 보너스로 더해진다. 그래서 무섭다.     


과거의 경험은 그냥 참고에 그칠 뿐이다. 과거의 경험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그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John에게 생명을 맡긴 칠면조만큼이나 어리석고 위험하다.     


칠면조에게는 단 한번이라도 미래 위험에 대한 신호가 없었을까?

아니면 그런 신호가 있었는데도 칠면조는 현실에 안주했던 것일까?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토대(직장이든, 제휴관계든).

어제까지 굳건했다고 해서 과연 내일, 모레도 굳건하다 할 수 있을까?

위험의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는데, 오늘의 실적에 취해서 그 시그널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내 찬란했던 경험이, 내일의 나를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의 경험이 한순간에 휴짓조각이 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는 참고에 그칠 뿐 절대적인 교훈이나 법칙이 될 수 없다.


우리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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