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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Feb 11. 2023

절집에 핀 매화를 보러 갔다가……

절집에 핀 매화를 보러 갔다가……


나는 어릴 적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다. 그렇다고 불교신자는 아니다. 나에겐 종교적 믿음이 없다. 당연히 기독교도 아니다. 종교적 신념은 그 종교에 대한 지식의 정도와는 무관하다. 아래의 글은 오늘 다녀온  절집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비난 가능성이 있다.) 


1.     지계(持戒)와 권력(權力), 그리고 자본(資本)


출 세간의 요체는 지계持戒에 있다. 지계의 핵심은 욕망을 통제하는 것이다. 수행자가 된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될 이러한 자세가 부처 사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서는 계율 자체가 왜곡되어 잘못된 것의 시작과 끝을 알 수가 없다. 


종교는 욕망의 실현도구가 아님에도 '기도'라는 이름으로 변질된 욕망을 추구한다.(대입기도, 합격기도, 천도기도, 사업번창기도, 심지어 새 차 액막이 기도까지) 기도, 즉 나만을 위한 기도, 혹은 나의 성공을 위한 기도는 타인의 실패를 기대함이요, 타인의 성공을 방해함이니 이는 불교의 근본인 나눔과 자비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임에도 중생구제를 원력으로 세운 수행자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이러한 특정인의 욕망의 잔치를 부추기고 심지어 그 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의 바탕에는 이 땅의 불교가 가진 근원적 문제, 즉 삼국시대 불교를 받아들인 방식과 원인에 맞닿아 있다. 왕권강화에 필요한 이념적 수단으로써 받아들인 것이 불교였으므로 깨달음이나 보시, 자비는 차후의 문제였고, 우선의 문제는 권력자들이 어떻게 하면 아무런 반항이나 적대감 없이 민중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인가에 그 중점이 있었다. 심지어 가장 엄격한 계율인 불살생마저도 유택有擇이라는 단서를 달아 가능하게 한 것을 보면 그러한 속셈이 너무도 확연하다. 


부가적으로 권력자들, 특히 왕들은 고승대덕이라는 이름을 붙인 몇몇의 어용 수행자들을 통해 거대한 불사를 일으키고 그것으로 그들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그랬던 것처럼 전륜성왕의 영예를 누리고 싶어 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나라 대찰 조사당을 보며 권력과 결합할 수밖에 없는 슬픈 불교의 뒷모습을 본다.


그러한 전통은 후대로 이어졌고 그것이 고려, 조선에 와서는 승僧과 병兵이 합해진 승병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청정한 수행자들이 갑자기 호국의 간성이 되고 그 선봉에 선 조선의 '사명'이나 '서산'이 엄청난 선승으로 칭송되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불교와 국가의 관계를 설정하는 최선의 모범사례로 이용되고 있다. 안타깝지만 위대한 호국불교의 전통은 이렇게 형성되었다. 


2.     불교와 시대정신


여전히 음력 4월 보름과 10월 보름이 되면 우리나라 절에서는 결제를 하고 하안거와 동안거를 시작한다.(해제일 7월, 1월 보름) 그 기간 동안 '이 뭣고'의 화두를 참선 수행을 한다. 소위 간화선이다. 고려시대 보우로 하여 시작된 우리나라의 전통적 수행방법인 간화선은 사실 송나라 사대부들의 지적인 유희 놀음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반론도 있다.)


“지금은 수행 중이니 조용히 하시오”라는 팻말을 걸어 놓고 한쪽에서는 관광객을 불러들여 기와를 팔고 또 한쪽에서는 기도를 한다. 죽은 조상을 들먹이며 자손들을 등치고 있음은 물론이다.


부처 생존 시대에 과연 이러한 방법(간화선)으로 깨달음을 얻었겠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현재의 불교 종단의 누구도 분명히 대답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 과연 이 방법으로 우리가 얻고자 함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아마 누구도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간화선'이라는 방법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철학적 유희이거나 거의 어렵겠지만 종교적 위엄 정도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바꿔 말하면 유효기간이나 넘었거나 혹은 잘못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정신적 만족이 아님은 분명히 알고 있다.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그 정신적 수행의 결과가 외부로 뿜어져 나와 대다수 민중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고, 또 시대를 관통할만한 정신적 의제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본다면 지금의 수행과 수행방식은 분명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부처 생존 당시의 불교는 그 시대상황과 견주어 볼 때 거의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평등과 자유에 기초한 민주적 사고와 행동은 당시 민중들에게 엄청난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불교를 세계종교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민주적 정신과 행동은 세월에 의해 가려지고 권력과 융합되어 버렸거나 사변철학의 도구로 전락하여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화려해진 오늘날의 모습만 남게 된 것이다. 


세간의 건물들처럼 날로 화려해지는 절집은 천박했다. 세간 사람들보다 더 속물적일지도 모를 수행자라는 이름을 단 사람들이 본래 불교의 민주성과 평등성, 그리고 정신적 가치를 훼손하고 그 훼손의 도를 넘어 이제는 역으로 그것을 방어하려는 모습조차 보이는 오늘날의 한국불교의 현주소다.


매화가 피어 향기를 뿜으나 절집 담장을 넘지 못한다. 내 카메라에 담긴 매화는 다만 꽃 그림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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