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Feb 10. 2018

커피를 만들며

학년 실에서 보낸 1년

造中於終咖啡 마지막 커피를 만드는 중에……

(학교는 한 해가 2월 달로 마무리 되고 3월 부터는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다.)


無痕無痍轉(무흔무이전) 흔적도 상처도 없이 굴러, 

無失無得去(무실무득거) 잃고 얻은 것 없이 지났네.

朝硏豆同年(조연두동년) 아침이면 콩과 세월을 함께 갈아,

飮與周香跡(음여주향적) 지극한 향기와 같이 마셨으니.


2018년 2월 9일 아침, 오늘 아침도 변함없이 커피와 세월을 그라인더에 넣고 간다. 


지난 190여일 동안(학교의 한 해 수업일수가 190일 이상이다.) 1학년 담임인 나는, 아침이면 1학년 1반에서 9반 까지 교실을 휘 둘러보고, 아이들과 인사도 하고 가끔은 잔소리도 한다.


그러고 난 뒤 물을 받아 물을 끓이고, 커피 콩을 넣고 그라인더를 열심히 돌려 다른 선생님들이 출근하시기 전에 커피를 내려 놓는다. 커피의 진한 향기로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꽤 좋다.


100g 포장으로 54포, 약 5.4Kg의 커피를 1년 동안 소비했다. 2017년 새 학교에 대한 나의 적응은 이렇게 커피를 만드는 것으로 얼버무려졌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국외자의 느낌을 숨길 수 없다. 아홉 분의 선생님 중 일년 동안 옆자리에 큰 산처럼 묵묵히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명예 퇴직을 하시고, 학년 부장이었던 선생님은 학교를 옮겨 가신다. 


언제나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하여 언제나 흔적없이 그 어느 것도 남기지 말고 살아야 할 일이다. 작은 잔에 커피를 따르고 향기와 함께 세월 또한 그렇게 마신다.


진주 명신고등학교 1학년 실에서 2월 9일 아침 쓰다.



작가의 이전글 立春之寒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