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Jan 12. 2019

밥해 먹고 쉬면서

1. 의심

매우 공리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나의 삶은 힐베르트 공간 내부의 임의의 좌표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좌표는 여러 가지 변인에 의한 결과값이다.(구체적으로 X, Y의 값을 정할 수는 없다.) 


나의 삶은 평면 좌표로부터 공간좌표에 이르기까지 捨象되는 수많은 점들의 이동으로서 그 모든 변화의 동력원은 나의 의지일 것이다. 때때로 나의 의지와 무관한 미세한 것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의 의지에 따른 결과 값이 반영된 것들이다. 따라서 내 삶의 공간 내부의 어떤 좌표도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 결국 나의 선택 값에 따라 변화하는 좌표와 그 좌표의 연결점으로 나타나는 직선 혹은 곡선들은 내 의지의 산물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그 좌표들, 혹은 직, 곡선들의 교차점에서 일어나는 감지해 낼 수 없는 미세한 변화가 누적되면서 내 의지와 관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좌표들은 원천적으로는 내 의지의 산물임에도 생경스럽고 가끔은 두렵기까지 하다.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좌표들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불교적 관점으로 본다면 나의 의지적 작용을 ‘業(업, karma)’이라고 부르고, 그에 대한 대상의 필연적 반응, 즉 결과 값을 ‘報(보, vip-aka)’라고 부른다. 因果業報(인과업보)라든지, 業因果報(업인과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성립하게 된다. 그러면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것조차도 필연이라면 과연 우연은 없다는 뜻인가? 


물론 부처 당시에도 이런 의심이 있었다. 그들을 無因無緣論(무인무연론)자들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유물론자들인 셈인데 나의 의심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나 역시 모든 것을 우연으로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이 없다고 가정하기에는 뭔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오늘도 나는 이런 의심 속에 하루를 보낸다.



2. 가치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가치문제에 직면한다. 가치라는 명사 앞에 놓이는 말의 종류만큼 가치의 종류는 다양하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는 완전히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나 또는 이곳저곳에서 습득한 선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다른 이와 차이가 나는 근본적 이유이다. 사람들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때로 생명까지도 포기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쌓아온 정신적 물질적 총화로서의 가치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2-1. 구분 사고

누군가의 이야기로 그를 구분하려는 나의 생각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 사람의 말에 스며있는 그의 가치가 나의 가치와 배치될 때 문득 상대방을 나와 구분 지으려는 나의 정신작용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 그 속에 존재하는 방향, 기준, 과정, 동력 등이 나의 그것과 반대이거나 다르다면 당연히 구분 지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3.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항상 부단의 의지

영하의 추운 날씨에 헬멧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사람들을 본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이 아침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 혹은 타인의 일을 위해 중요하거나 또는 사소하거나 간에 지금 그는 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 반대편 따뜻한 승용차 안에서 그를 보는 내가 있다.


“正義란 각자에게 그의 권리를 분배하는 부단하고도 항구적인 의지이다.”


로마의 법학자 Domitius Ulpianus (울피아누스)는 정의를 위와 같이 풀이했다. 평균적이든 배분적이든 분석은 잠시 접어 두자. 나의 처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이 겨울 아침을 달리는 사람들의 처지를 正義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울피아누스의 正義의 定義에 의하면 그렇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결국 울피아누스의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강자의 논리이며 지배의 정당화인 셈인데 2000년이 지난 이 땅에서는 여전히 이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닌 논리가 正義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듯하다.


파인텍 고공 농성의 종결, 하지만 택시 고공 농성, 철거민의 죽음, 김용균 이후 또 다른 하청 노동자의 죽음……. 울피아누스가 살았던 고대 로마와 비슷한 21세기 대한민국이라니!!!

이전 13화 권력과 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