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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ik May 03. 2020

그저 달린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

무라카미 하루키 저서


지난 4월부터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무릎 수술 후 1년 만에 복귀한 셈이다. 무릎 수술을 하기 전까지는 매년 개최하는 나이키 마라톤에 참여했고 횟수로 7번 연속으로 완주에 성공했었다. 그만큼 러닝에 자신감도 있었고 달리는 것에 큰 희열감과 자기 만족감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4월에 처음 러닝에 복귀할 때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바로 알았다. 몸에 체지방이 올라왔고 나름 웨이트 운동을 통해 근육이 만들어진 상태라 뛰기에는 몸이 상당히 무거웠다. 몸을 가볍게 만들고 싶어 졌다. 그때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약 2주간 고구마/닭가슴살로 이루어진 식단을 만들었고 몸에 붙은 체지방을 걷어내는 것에 힘썼다. 그리고 헬스를 한 후에는 반드시 유산소 운동(러닝머신, 사이클)을 40분 동안 진행하였다. 그런 노력 끝에 5월 1일 저녁 러닝에서는 예전 기록을 다시 만들었다. 다이어트와 러닝 복귀의 성공이었다. 


러닝에 복귀하기 전 친구의 추천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러닝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한번 읽어보고 달려보라는 이야기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달리기를 주제로 만든 회고록, 자전적 에세이 작품이다.


달리기를 원하는 나에겐 옆에서 같이 달려주는 러닝메이트 같은 책의 내용들이었다. 작가의 달리는 이유,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기분, 달리는 과정 등 작가의 100% 경험담으로 만들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글을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달리기를 한다고 했다. 글을 쓰는 작업은 상당한 체력이 필요함을 느끼고 체력 증진을 목표로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키 작가는 달리기를 통해서 본인의 살아온 인생과 소설가로서의 자질을 검토한다. 달리는 작가로서.

P.258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그렇다, 아마도 이쪽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루키 작가는 마라톤 100km을 하던 동안에도 끝까지 걷지 않았다고 한다. 극한의 몸상태에서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단지 달리기에만 집중했다. 100km를 완주하기 위해서 지난 몇 개월의 힘든 연습이 있었고, 달리는 내내 필요한 집중력이 그를 완주하게 만든 것일 수 있다. 


p229.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에는 친절한 마음의 편린 같은 것이 보일까?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 태평양 상공에 덩그러니 떠 있는 무심한 여름 구름이 보일 뿐이다.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구름은 언제나 말이 없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하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선을 향해야만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안쪽인 것이다. 나는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깊은 우물의 바닥을 보는 것처럼. 


나에게 상당히 인상 깊은 책이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서서히 힘들어지고 죽을 만큼 힘든 구간이 발생하지만 힘든 구간을 벗어나면 어느새 몸도 적응이 되어 달리는 상태가 된다. 그 상태가 되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몸이 힘든 구간에서 정신의 상태가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상태로 목표했던 거리 수/시간을 채우면서 달리기를 지속한다. 단 한 명의 러너로서.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달리는 사람에게 오롯이 목표한 지점만 생각할 뿐이다. 달리는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내가 가야 할 곳만 바라보는 그 집념이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얼마큼 본인에게 집중하는 것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핵심 요인이지 않을까 싶다.


p256.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잘 된다고 하는 가정이지만) 다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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