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그리고 푸틴

전혀 다른 두 푸틴 이야기

by 김현정

세상에는 똑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속사정은 전혀 다른 것들이 있다.




바삭한 감자튀김, 그리고 그레이비소스

캐나다는 미식으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다.


캐나다에 잠깐이라도 살아본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그 나라만의 특별한 음식이라고 해 봐야 팀홀튼 도넛, 팀홀튼 커피, 캐나다 드라이 정도에 그칠 때가 많다.


그런 캐나다에도 한국의 비빔밥, 일본의 초밥, 이탈리아의 피자처럼 ‘우리 것’이라고 당당하게 내세울 만한 음식이 하나 있다.


바삭한 감자튀김 위에 치즈 커드(치즈 덩어리)를 올리고, 따끈한 갈색 그레이비소스를 흥건히 부어낸 음식, ‘푸틴’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푸틴이 언제 어디서 생겨난 요리인지 그 기원은 불분명하다. 다만, 1950년대 말에 퀘벡에서 등장해 줄곧 많은 사랑을 받아온 푸틴은 명실상부한 캐나다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캐나다 사람들의 푸틴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곳곳에 푸틴 전문점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 카페테리아나 맥도날드, DQ 같은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도 손쉽게 푸틴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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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TERIA_POUTINE.jpg


다정한 맛, 푸틴

유독 바삭한 맛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푸틴은 다소 낯선 맛일 수도 있다.


“맛있게 튀겨 놓은 감자에 왜 굳이 눅눅한 소스를 뿌려 먹어?”

“찍먹 몰라? 탕수육도 찍먹인데, 감자튀김이 부먹이라니, 말도 안 돼.”


이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갓 튀겨낸 감자튀김에 먹음직스러운 갈색 고기 소스를 끼얹어낸 푸틴캐나다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다정한 위로의 맛이다.



매운맛, 푸틴

문제는 이름이다.


이토록 따뜻하고 다정한 맛을 내는 푸틴을, 그 푸틴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길고 긴 문장이 필요하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난 푸틴 좋아해.”라고 말한다면 다소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그 러시아 대통령?


이건, ‘푸틴(poutine)’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 ‘푸틴(Putin)’의 잘못이다.


영어로 쓰면 그나마 낫다.

발음은 비슷해도 글자수도 다르고 철자도 확실하게 구분된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매운맛 푸틴은 Putin,

캐나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다정한 맛 푸틴은 poutine.


그러나, 프랑스어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프랑스어로는

감자튀김 요리도 ‘poutine’,

러시아 대통령 푸틴도 ‘Poutine’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권좌에 오른 2000년부터 줄곧 캐나다 음식 푸틴과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같은 이름을 공유했다.


사실, 이름이 같다고 모두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와 날아다니는 ‘파리’

목이 긴 동물 ‘기린’과 일본의 맥주 브랜드 ‘기린’

지금은 튀르키예로 이름이 바뀐 ‘터키’와 칠면조를 뜻하는 ‘터키.’


세상에는 생김새는 똑같지만 뜻이 전혀 다른 말이 많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poutine)은 웃어 넘길 수 없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세계 곳곳에서 반전 시위가 벌어졌고, 러시아 대통령 Poutine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 감자튀김 요리 역시 비난의 표적이 됐다.


실제로 협박과 항의에 시달리던 퀘벡의 한 푸틴 전문점은 메뉴판에서 ‘poutine’을 지우고, 대신 ‘감자튀김-치즈-그레이비’라는 새로운 이름을 적어넣었다.




언어는 음식보다 더 매콤하다

푸틴(poutine)과 푸틴(Putin).

혹은, 푸틴(poutine)과 푸틴(Poutine).


철자 하나, 발음 한 끗 차이가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국제정세라는 매운 양념이 더해지면, 평범한 메뉴 이름이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언어는 때로는 음식보다 더 짭짤하고, 더 매콤하다. 이름 하나가 웃음을 부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름 하나가 눈물을 부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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