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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Dec 11. 2015

당신의 꿈은 몇 도입니까?

어른들의 마음에는 꿈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마감기한이 코앞에 닥친 프로젝트는 어떻게 끝낼지, 당장 오늘 저녁에 뭘 먹어야 할지, 애들에게는 뭘 먹여야 할지, 다가오는 집안 행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친구들과의 약속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집안일은 언제 어떻게 하나씩 해치울지 고민하고 걱정하며 어른의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꿈이라는 걸 꿀 시간이 없다.


꿈을 잃은, 혹은 꿈을 잊은 어른들의 삶은 쉼 없이 돌아가는 일상으로 메워진다. 간신히 눈꺼풀을 밀어 올리고 아침 일과를 이어나가다 보면 곧이어 오후가 찾아오고 오후에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면 곧장 저녁이 되고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저녁의 일들을 해결하고 나면 자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는 무시무시한 힘이 숨어 있다. 매일 의미 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을 열심히 살아내지 않으면 어떤 것을 꿈꾸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엇을 위해서 끝없이 되돌아오는 시간들을 묵묵히 버텨낼 건지 제대로 목표를 정해두지 않으면 한참 후에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바로 바쁜 일상을 쪼개고 또 쪼개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나의 꿈이 무엇인지 틈틈이 고민을 해 봐야 하는 이유다.



버킷리스트

어쩌면 꿈을 잃고 살아가는 자들의 반란이 이미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회색빛 인간처럼 정체성을 잃고 그저 주어진대로만 살아온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거다.


2004년 겨울. 국내 한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첫 번째 책을 번역하게 됐을 때. 난 정말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내가 꿈꿨던 일을 '제대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 도취돼 회사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밤이 늦도록 자판을 두드려댔다. 이따금씩 새벽까지 이어지는 밤샘 작업 끝에 어슴푸레 하늘이 밝아오는 광경을 보게 될 때면 드디어 꿈이 이뤄진 것만 같아 피곤하기보다 오히려 황홀했다. 신나게 번역한 첫 번째 원고가 책이 되어 나오자 말 그대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역서가 늘어갈수록 신남 지수는 급격하게 떨어졌고 흥분도 줄어들었다. 어릴 적 내 꿈은 '번역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면서 사는 거'였다.  그중 하나인 번역일을 하게 됐으니 꿈을 이룬 셈인데 어찌 일을 할수록 저자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건지 자신도 없어지고 내게 꼭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건지 확신도 사라졌다.


한 때는 붙들 수 없는 별처럼 멀게 느껴졌던 꿈이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되자 난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남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일 말고 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는 꿈은 가슴 깊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꽁꽁 숨겨둔 채 흐르는 시간을 안타까워하고 바쁜 삶을 탓하고 주변을 핑계 삼았다.


하지만 이제는 일상을 잠시 접어놓고 다시 꿈을 꾸고 싶다.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져 쓰레기 취급을 받던 수레에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은 빙봉과 조이의 노랫소리처럼. 무언가가 나의 꿈에 슬슬 불을 댕기고 있다.


그만하면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이제 다시 한 번 제대로 꿈을 한 번 꿔 보라고..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나에게.


뜨겁게 끓어올랐으면 좋겠다. 나의 꿈이.


"당신의 꿈은 몇 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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