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입문기
그는 최저시급을 받으니 최저 노동을 제공하겠다는 각오라도 한 것처럼 내게 건성건성 했다. 주문 받았고, 음식 내줬고, 에어팟 끼고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어쩌라고 계열의 묘한 불쾌감을 남겼다. 배달 어플로 주문한 후, 주방에서 요리만 하던 사장에게 키오스크와 셀프 서비스 도입을 제안하는 리뷰를 남기는 상상을 하다가, 실소했다. 이 서걱거리는 기시감, 내가 내게 하던 짓이었다.
밥 먹다가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게 가장 불친절 한 사람은 나였다. ‘굳이’만 붙이면 뭐든 하지 않아도 되어서 나는 나를 향해 최저 서비스만 제공해 왔다. 내 선택들은 기껏해야 ‘굳이 살고 싶은 것은 아니야.’를 가속했지만, 깨진 유리창의 관성은 힘이 셌다.
그도 힘이 셌다. 반면교사는 과연 1타 강사였다. ‘굳이’의 반작용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필라테스를 정말 하기 싫었지만 내 의사를 무시할 명분은 충분했다. 1:1 3회, 4:1 1회, 7:1 1회로 묶인 체험권을 겪고 난 이후 1:1 30회를 일시불로 결제했다. 1주 2회 잡으면 같은 기간 식비보다 많을 금액이었다. 내가 내게 친절할 수 있는 에너지가 당신에게서 나왔다.
살다 보면 자살이 친절한 선택지로 다가올 때가 있다. 지겹고 시시한 인생에게 생명의 고유 가치는 공허하다. 오히려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생명 현상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오기야말로 자유 의지를 실현함으로써 인간 존엄성을 드높인다. 망가진 나를 겨누는 통쾌한 복수극에 피해자는 없다. 내 몸뚱이 내가 처리하는 것이고, 내 시신 처리 비용은 차고 넘치게 지불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쾌고의 합리성을 실천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처방 받은 수면제들을 못 본 척한다.
삶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산 자의 기만이다. 당분간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부릴 수 있는 중2짜리 어리광인 것이다. 사실 몸 구석구석에서 기척하는 죽음을 감지했다. 이미 약으로 된 인간이었다. 약 덕분에 죽음을 내게 접붙이는 상상력이 부족했다. 살고 싶은 건 아니라면서 비겁하게도 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지겹고 귀찮은 관성을 끝낼 수 없으므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지긋지긋함에 내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자신을 죽여줄 신부를 찾는 939살짜리 도깨비의 마음이 대충 이해되었다. 그는 살아도, 살아도, 살아 있다 보니 공짜가 확실한 삶이 무용해졌을 것이다. 무심함과 무감함으로 누벼진 시간을 응시하다 보면 눈물이 응결된다. 눈물을 참고, 흘리고, 참고, 흘리다 보면 더 쏟아낼 게 없어지고, 없는 것을 900년쯤 삭히면, 공허로 응축된 ‘나’가 어느덧 무용함과 물아일체 된 무신(無神)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옷을 바꿔 입으며 반복되고, 900년은 그 옷조차 유행을 몇 번 돌아 닳고 닳을 시간이다. 또 그러한 것들을 또 그러하게 견딜 뿐이다.
필라테스는 매일 똑같이 복제되는 ‘오늘’에 삽입된 변수였다. 열 달 걸렸다. 작년 봄, 약을 챙기는 마음으로 요가를 생각했었다. 허리를 숙이면 손끝이 무릎 아래에 간신히 닿을 정도로 몸이 뻣뻣했다. 몸이 유연해지면 순환계와 신경계에 생기가 돌아 수면을 붙들 기력을 합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생각도 아니고, 요가센터들이 멀어서 망설이는 사이 바빠졌다. 또 별 일 없이 한 해가 재작년처럼 지나갔다.
한 해 동안 나는 더 적극적으로 지겨워졌다. 작년 11월부터 맛있는 음식에 문호를 개방하며 개혁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맛있음이 주는 생기에 익숙해지니 맛있음도 반짝임이 발해갔다. 괜히 식비만 늘었다. 당근마켓에서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검색하던 어느 날 도보 10분 거리의 필라테스를 발견했다. 이제 막 스타벅스에서 3시간 뭉개는 문화에 입문했을 뿐, 편의점 샌드위치에 만족하는 인간에게 기구 쓰는 비싼 요가는 ‘슈크림 가득 바움쿠헨’ 이상의 허영이었다. 그러나 매일 아무것도 아니기를 참는 걸 기다리다 지쳤다.
땡벌, 땡벌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 기분으로 메시지로 시간과 비용을 안내 받았다. 상담 후에도 ‘집에서 스트레칭만 해도 충분할 텐데 굳이?’가 습관적으로 흥선대원군이었다. 그러나 안내 후 며칠을 두고 봐도 나는 스트레칭하지 않았다. 별 수 없었다. - 체험권 등록하고 싶습니다.
대답이 없었다. 당근마켓에 광고를 했으면서 연말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꺼두는 자영업자의 불성실함이 괘씸했다.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습성’의 중력권을 맴도는 중이었기에 우발적 결심은 허약했다. 메시지를 삭제하려 했다. 그러나 당근마켓의 메시지는 카톡처럼 삭제되지 않아서 별 수 없었다. 24시간이 지나서야 답이 왔다. 그래,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상담을 이어갔다. 하지만 옐로카드 하나.
등록 직후 바로 수업할 수 있을지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 맞춰서 갔더니 스케줄만 확인했다. 메시지나 전화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원장은 내가 1:1 수업을 하게 될지 몰랐다고 했다. 꽤 큼지막한 J형 인간에게 5분도 안 되는 시간 때문에 왕복 20여 분을 쓰게 만들고, 수업을 예상하고 구성한 스케줄에 균열을 만들었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다니, 옐로카드 둘, 내가 필라테스는 무슨.
그날 밤, 매칭된 강사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에는 상업적이지만 탱글탱글한 친절이 가득했다. 고정급 알바와 비율제 강사의 차이겠지만, 나도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유쾌했지만, 어라, 그러게, 나도 친절할 줄 아는데 왜 내게는? 잠깐 벙찐 채로 메시지를 보고 있다가 옐로카드 둘을 레드카드로 전환하기를 유예했다.
수업은 제시간에 시작되었다. 20대인지 30대인지 모를 여성이 내 몸을 터치하는 데서 오는 리비도는 하루 만에 박살났다. 첫 날은 갈비뼈만 부단히 여닫으며 가볍게 스트레칭 했기에 여유로웠다. 기구도 별로 쓰지 않고 시시해서 차라리 그 비용이면 타이 마사지 받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둘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아팠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빠지며, 돈 주고 고문 받던 요가의 기분이 생생하게 복기되었다. 역시 나는 요가류의 운동을 싫어했다. 어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요가 때와 달리 내 통증은 나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통증 사이사이에 저녁 메뉴를 떠올릴 때조차, 강사는 하나, 둘, 셋, 내 몸에 집중했다.
필라테스 강사란 친절한 어투로 ‘그렇죠.’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동작을 파격적으로 못 따라가고 있다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았다. 신음으로 증언했고, 거울이 증명했다. 그러나 강사는 자세를 교정해 주며 나를 끊임없이 긍정해줬다. 종종 내 동작보다 강사의 ‘그렇죠’가 먼저 나올 만큼 입에 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긍정 피드백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평범한 심리학에 굴복하는 것이 민망하고 자존심 상했지만, 나는 속수무책으로 고양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게 물었다. 나는 나의 ‘그렇죠.’인가? 응당, 아니었다. 나는 자아실현에 실패한 숫자벌레로서, 나를 13.5년째 17만 원짜리 월세방에 가둬 둔 채, 내게 줄 먹이에도 숫자로 된 명분을 요청해 왔다. 명분에 응하지 못할 때가 많으므로 보는 나는 보이는 내가 한심했다. 혼자에 길들여진 인간은 내심 자신을 무시해 왔을 것이다. 방구석에서 먹는 하찮은 끼니를 배달 음식으로 무마했을 것이다. 그러나 편한 것과 친절한 것은 달랐다. 나도 한없이 편했다.
내게 가장 불편한 자세에서 친절을 충전했다. 사소한 선(線)을 넘는 것에도 옐로카드를 남발하는 투덜이가 순해진다. 자기 긍정 경험이 부족한 것들은 모나기 마련이고, 자신의 예각에 먼저 찔리는 건 자신이었다. 도깨비 가슴에 박힌 칼처럼 거창하진 않아도, 뭐든 가슴에 찔려 좋을 건 없다. 자해였다면 더욱 더. 그래서 타인으로부터 받는 50여 분의 집중이 나를 긍정한다. - 아프시면 거기까지만 하시면 되세요, 그렇죠. 제가 받쳐 주니까 괜찮아요, 그렇죠, OO님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죠. 더, 더, 더, 더, 그렇죠. 그렇죠, 긍정으로 빛나는 그렇죠. 마법처럼 변하는 그렇죠, 부(不)나라의 미래 나에게만 달렸다. 긍정 전사(傳寫/transcription) 슈퍼 그렇죠.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