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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Mar 20. 2023

핫도그 - 언더도그를 위한 핫하지 않은 위로

‘엄마 100원만.’의 시절, 100원은 완벽한 물체였다. 미취학 아동에게 100원으로 살 수 있는 천국은 넘쳐났다. 새우깡이나 자갈치 한 봉지로도 하루의 제목을 갈음할 만했다. 하루의 제목이 반복되는 몰개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맛있으면 행복했다. 성장기 어린이는 입 안에서 펼쳐지는 행복의 힘으로 자아실현을 이뤄 갔다. 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 먹어도, 맛있어도, 여전히 미완이었으므로 완벽해지기 위해 100원이 계속 필요했지만 엄마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루는 100원 너머를 위한 쟁투였다.


100원을 더 모으면 빼빼로나 칸초를 살 수 있었지만, 어린이에게 당장의 천국을 지연할 인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어린이는 미완이었고, 200원은 미지였다. 당시는 하루가 길었던 만큼, 200원의 순간은 까마득했지만, 돌이켜 보면 간간히 미지를 정복했었다. 성장은 미지를 채워 나가는 것이므로 정복이야말로 어린이의 무궁한 생태였다. 엄마나 아빠 흰머리 20개로 도착한 보물섬에 정작 빼빼로나 칸초가 들 자리는 없었다.


200원의 왕좌는 핫도그 차지였다. 튀긴 밀가루가 맛없을 수 없었고, 표면은 설탕 범벅에 케첩이 뿌려져 달콤상큼 어린이다웠고, 속에는 그 나이 내가 경험한 식재료 본좌 소시지가 중심을 잡았다. 게다가 폭신폭신 따뜻했다. 연약한 유치로 한 입 베어 물면 토닥토닥 엄마가 안아주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내 꿈은 핫도그였다.


정작 핫도그를 먹던 기억은 없다. 기억 속 핫도그의 최초가가 150원이었는지 200원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저 과자보다 비쌌다는 사실과 슈퍼마켓과 반대 방향으로 뛰던 결심과 숨 가쁘지만 침샘부터 달달해진 설렘과 핫도그를 베어 물 때 퍼지던 충족감이 안온하게 남았을 뿐이다. 나는 빼앗긴 안온함을 다시 찾지 못했다는 소소한 쓸쓸함으로 빗어진 어른이 되었다. 막연히, 부모들이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것’에는 자기 어린 시절에 보내는 위로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허허로움도 조그마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조차도 겪지 못해서 다시 되뇌어 본다. 내 꿈은 핫도그였다.


그 시절 이후, 나는 착실히 내가 되고 싶은 적 없는 내가 되어 왔다. 소풍날 영어 단어장 챙겨갈 만큼 공부도 했고, ‘꿈은 이루어진다.’에 기꺼이 속아도 봤지만,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는 정작 근시여서 멀리 보지 못했다. 자살 근처를 맴돌며 안경을 쓰려고 고군분투했고, 좀 더 낮은 고도에서 -10디옵터짜리 안경을 쓰고 보니, 내가 몇 살이게?


그다지 핫도그가 당길 나이는 아니었다. 내가 그리던 고도는 오지 않았다. 혹은 내가 맞출 수 있는 고도를 합리화 했다. 세상에는 핫도그보다 맛있는 음식이 얼마든지 있었고, 나는 한 끼 만 원쯤은 생각 없이 쓸 수 있었다. 대단히 열심히 싸운 것 같은데, 누구와 싸운지도 모른 채 잔뜩 패배한 기분이었다. 만 원짜리 식사가 끝나면 엄마 흰머리 20개를 뽑고 싶은 기분이 이 사이에 낀 듯했다.


아마도 패잔병의 걸음걸이를 하던 날이었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마흔이 넘어가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못 살고 있는 것에 눈감을 수 있을 만큼 뻔뻔해진다. 밥벌이와 브런치에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확신으로 선명해지는 날 문득, 핫도그 3,500원이 눈에 들어왔다. 늘 지나다니던 길이었기에 늘 그랬듯 지나쳤지만 3,500원이 자꾸 좇아왔다. 건방진 핫도그. 런치플레이션 시대라지만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가, 3,500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뭔가 싶다가, 요즘 새우깡은 얼마인지도 모른다 싶다가, 3,500원짜리 핫도그는 내가 알던 핫도그가 아니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얼핏 모짜렐라가 붙어 있던 것이 떠올라 발길을 돌렸다.


다이어트 하느라 2022년에 핫도그를 먹은 적 없었고, 그 이전에도 내게 유의미한 음식은 아니었다. 맛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핫도그는 기본적으로 애들 먹는 간식이었다. 게다가 간식이라고 하기에는 푸짐하고, 끼니라고 하기에는 아쉬워서 먹을 타이밍 잡기가 애매했다. 체중 조절 이전에도 나름 칼로리를 의식했기에, 핫도그 한 번 참은 것으로 치킨 먹을 때의 죄의식을 상쇄했다. 그러나 그날은 치킨 먹은 지 오래됐고, 3,500원을 따지고 싶었다. 네가 뭔데.


나는 3,500원짜리 통모짜렐라치즈핫도그를 샀다. 기본 핫도그는 1,500원이었으나 내가 100원만 달라고 조르던 엄마가 지금 나보다 10살은 더 어려질 만큼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무상해진 세월을 플렉스하려면 최고가를 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엄마, 나 이정도 사먹을 수 있을 만큼 밥 벌어 먹는 어른이 되었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그 시절 단칸방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이 아니지만 엄마는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핫도그 가게는 인근 대학교 정문 건널목 근처에 위치했다. 마흔 넘은 아저씨가 물 빠진 검은색 체육복 상하의를 맞춰 입고, 촘촘히 묻힌 설탕에 케첩을 잔뜩 뿌린 핫도그를 들고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대학생들과 8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핫도그를 베어 물던 구체적 기억이 없어 캠퍼스 스탠드에서 핫도그를 먹음으로써 기억에 아로새기기로 했다. 신호가 바뀌어 우리가 교차될 때, 나는 속으로 신구 아저씨처럼 물었다. - 네들이 핫도그 맛을 알아?


혼자 피식거리며 그늘진 스탠드까지 갔다. 막상 캠퍼스에 들어서니 혹시라도 내가 가르쳤던 학생과 마주칠까봐 조마조마했다가 금세 알게 뭐냐 싶었다. 내가 핫도그를 먹던 시절 네들은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곧, 혜자 아줌마처럼 답했다. - 그래 이 맛이야.


아니, 진화해 있었다. 한 때 내 꿈을 한 몸에 응축한 천국이 바삭바삭했다. 쭉 늘어지는 모짜렐라치즈로 ‘겉바속촉’이 완성되는 동안 하염없이 달달했다. 주관적 만족감은 덜할지 모르나 핫도그 맛의 완성도는 분명, 전성기였다. 핫도그는 모짜렐라치즈뿐만 아니라 떡, 스팸, 어묵, 감자, 라면, 파마산, 허니버터, 머스타드, 칠리, 체다치즈와 함께 하며 다양하게 변이했다. 본래 콘도그였던 핫도그는 한류가 프리미엄이 된 시대에 ‘K-핫도그’로 당당할 만했다.


3,500원을 먹어 치우는 데는 1분 남짓 걸렸다. 앞섶이 설탕으로 지저분해졌다. 설탕을 털어내며 허공에 꼬지를 꽂았다. 3,500원은 단순히 물가 상승률이 반영된 금액이 아니었다. 너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1년에 90원 안팎씩 몸값을 올렸는데, 나는, 나는, 나는, 하며 말줄임표를 찍듯이 꼬지를 까딱댔다. 매년 100원도 안 되는데 나는, 나는, 나는, 허공이 케첩 같은 피라도 흘리기를 바랐다. 정복할 미지를 포기해 세상이 미지급한 인생, 그래서 미생인가 하며 내일이 미지수가 되지 않는 조금 지겨운 이미 지는 이미지 게임, 다시, 내가 몇 살이게?


나는 더 이상 핫도그를 꿈꾸지 않는 불완전한 물체였다. 주머니 안의 500원짜리를 손 안에서 굴려도 별 감흥이 없었다. 맛있는 패배감과의 악수(握手)가 악수(惡手)인지 호수(好手)인지도 모르겠다. 케첩으로 된 호수가 악수(惡水)더라도 그 안에서 헤엄칠 수 있는 기분만 있으면 된 게 아닌가, 또 타협한다. 이제 중요한 건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이다.


세상 얌전한 언더도그는 꾸물꾸물, 순무 대신 가끔 핫도그를 먹을 듯하다. 역전승을 바라는 건 아니고, 노년기가 보이기 시작한 어른이도 남몰래 유치해 볼 수 있으면 좀 나으려나 싶다. 내 꿈은 핫도그 먹을 때 설탕을 덜 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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