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달구벌대로 만촌-범어 사이 가로수는 계절이 어긋났다. 플라타너스는 겨울은커녕 초가을이었다. 초록의 하단과 일부 가지 끝만 단풍이 들었다. 플라타너스의 건강한 노욕과 생태적응성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긴 여름을 살고 있다는 사실만 푸르렀다. 그러나 초록은 이(異)세계에서 삐져나온 실수 같아서 싱그럽기 애매했다. 초록 사이의 학원 간판들은 지나치게 이 세계의 과욕이어서 징그러웠다. 2023년, 나는 과욕의 중심에서 뿌리 깊되 앙상했다.
12월 11일, 전국적으로 내린 비도 계절이 어긋났다. 겨울비라고 하기에는 질기고 무거웠다. 힘을 쥐어짜 초록을 붙들고 있을 플라타너스는 빗방울 난타를 견디지 못했다. 빗살은 빛깔을 가리지 않고 나뭇잎을 벗겨냈다. 속살 같은 나뭇가지가 앙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겨울의 습관이 오래된 내게, 겨울이면 하늘로 뿌리 내리던 활엽수의 역사가 지연된 사태가 끝내 계절의 모욕으로 읽혔다. 단풍을 거부하는 초록은 여름을 향한 지조가 아니라 뿌리의 시간을 외면한 이기적 고고함이었다.
빗물을 머금어 흐무러진 낙엽을 밟으며 퇴근했다. 낙엽 사이에 간간히 초록 잎이 짓뭉개져 질척였다.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낙엽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었다. 낙엽층이 얇아 빗물은 거침없이 지표면 아래로 침투해 들어갔다. 냉기는 물을 타고 스밀 테니 뿌리의 겨울은 조금 더 시릴 듯했다. 하긴, 가로수는 낙엽을 가져본 적 없으므로 익숙한 겨울일 것이다. 구청은 성실하게 낙엽을 치웠다. 낙엽은 나무가 뿌리는 쓰레기였고, 구청은 법대로 했다. 신발이 젖었다. 나는 내 낙엽을 밟고 싶었다. 나는 초록도 아닌 주제에 낙엽을 만들지도 못했다. 모든 것이 합법적이었다.
인근 대학 캠퍼스 플라타너스는 내가 알던 계절에 맞게 낙엽이 졌다. 대학 직원들도 공무원만큼 성실했다. 낙엽을 치우는 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구분되는 듯했지만, 구분하지 않았다. 몇 명은 등에 장비를 메고 긴 대롱으로 바람을 뿜어 낙엽을 한 데 모았고, 몇 명은 모인 낙엽을 포대에 담았다. 낙엽은 바람에 날려 흩어질 것이므로 소거 구역은 길과 풀밭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이었다. 덕분에 길은 한결같이 깔끔했지만 나무는 쓸쓸해졌다. 바람 뿜는 기계 소리를 나무의 울음처럼 들었다. ‘나무’에게는 낙엽이 필요했다. 부엽토가 만들어낼 유기물 결핍은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은 ‘가로수’가 영양실조로 쓰러지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대청소가 시작되기 전, 일부러 길 가장 자리나 풀밭을 걸었다. 낙엽은 크로와상처럼 밟을 때 바삭바삭했고, 밟으면 폭신폭신했다. 내가 지나간 소리 위로 또, 낙엽들이 하나둘씩 포실포실 덮였다. 가을은 여름이 남기고 간 느슨한 여음과 높아진 하늘에서 쏟아진 맑은 여운이 하루하루 직조되어 나무가 겨울에 덮을 이불을 완성하는 시간이다. 공기를 품은 낙엽층은 포근한 솜이불처럼 뿌리를 덮었다. 그러나 도시의 나무는 이불을 덮을 수 없었다. 말매미가 뒤엉킨 듯한 기계음 윙윙대고 나면 이불의 속 재료가 치워졌다. 도시의 ‘나무’ 뿌리는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으로 제련된 냉기를 견뎌야 했지만, 보온은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은 ‘가로수’가 동사하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외로움을 방치할 뿐이다. 낙엽은 나무에게 언젠가의 유기물이자 당장의 이불만은 아니었다. 낙엽은 그 자체로 기억이자 기억을 나눌 말동무였다. 나이테는 나무 내부에 각인된 나이였지만, 나뭇잎은 나무 외부에 펼쳐진 시간이었다. 나이는 시간의 부피로서 기억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릇에 담기는 내용이다. 나무는 봄부터 초록의 명도를 달리하며 빛, 비, 바람과 몸을 비볐다. 나뭇잎에는 세 계절의 기억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나무는 겨우내 낙엽을 덮고, 갓 구운 크로와상 같은 기억을 낙엽과 도란도란 나눠 먹는다. 그때 이랬지, 그랬지, 저랬지, 어땠니, 인간은 나무의 고요한 소란을 듣지 못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나무가 아니라 가로수였다. 가로수는 먹고 자랄 기억이 없다. 봄까지 그저 off될 뿐이다.
나도 사람이라기보다는 선생이었다. 선생의 on-off는 성실했다. 아니, 선생만 on이었다.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사람은 자신을 노예로 부렸다. 자신이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 때문에 착취는 무자비하되 인지하지 못했다. 집-공부방 사이에 침투하는 다른 공간은 카페나 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수업 준비를 했다. 사람과 함께 먹은 마지막 식사는 8월 17일이었다. 그 정도가 올해의 주요 기억이 되는 사태에 내 이름을 붙일 순 없었다. 나는 그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돈합성’ 되는 이름이었다.
돈은 버는 것이 내 돈이 아니라 쓰는 것이 내 돈이다. 기억의 기회비용으로 번 돈을 새로운 기억을 합성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 썼다. 일시적 쾌락은 기억을 합성하는 힘이 약하다. 유튜브, 드라마, 영화, 스포츠 경기는 타인의 기억을 관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쇼츠나 릴스는 아예 서사의 자살이다. 기억을 합성하지 못하고, 불안한 노후를 위해 돈을 모은다면, 나는 늙기 위해 돈을 버는가.
off 된 나는 이 세계로 추방된 이(異)세계의 실수(失手)이지만 실수(實數)가 되지 못한 허수(虛數)다. 이(異)세계를 꿈꾼다. 그래서 트럭이 나를 치어 내가 이(異)세계로 떨어지는 상상으로 웹소설이 범람한다. 얄팍한 서사를 링거처럼 맞으며, 결국 올해도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낙엽을 잃은 가로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내가 내 기억을 빼앗았지만, 나무는 잘못이 없었다. 그래서 더 억울하겠지만, 내가 선생으로 돈을 벌 듯 나무는 가로수여야 했다.
12월 14일~15일 또 장맛비 같은 비가 한 번 더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틴 초록은 대단했으나 12월 21일 대구 최저 기온은 -9도, 22일 최저 기온은 –10도였다. 엽록체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시간이다. 플라타너스는 끝까지 버티던 초록을 후회했을까. 최후의 낙엽은 어떤 기분일까.
구청 관련 부서 직원들은 늦은 낙엽 때문에 다시 바빠질 테고, 나는 또 가짜 낙엽들을 벌 것이다. 열심히 벌 것이다. 목에 나이테가 졸라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