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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Jan 19. 2024

라면 열 봉지를 버리다니

2023년은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되었다. 유통 기한 임박한 라면 열 봉지가 남았기 때문이다. 라면 없어도 괜찮은 삶이 시작되었다. 이젠 더 이상 세일 기간에 박스 단위로 라면을 쟁여 놓지 않을 것 같다. 건강 때문은 아니다. 애초에 건면을 먹었고, 김치를 곁들이지도 않았고, 국물도 마시지도 않았고, 야식으로 먹지도 않았다. 돌이켜 보니 두어 달 간 라면이 먹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것을 문득 깨달았다.


자취생에게 라면은 영혼의 음식이다. 인스턴트 음식 과학의 정수가 응집된 식량으로서 빠듯한 주머니사정과 한결같은 귀찮음을 한 번에 해결해준다. 실패할 수 없는 맛과 표준화 된 양으로 끼니가 예상 가능한 ‘그럭저럭’으로 보호된다. 거의 모든 식재료를 포용하므로 남은 음식 처리하기도 좋다. 집에서 어떤 요리를 했듯, 남은 식재료는 라면의 부재료가 될 수 있다. 나물을 먹기 힘든 자취생에게 채소를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셈이다. 나는 라면 덕분에 파, 무, 버섯을 대량 섭취했다. 계란이나 순두부로 단백질 균형을 맞추면, 국물을 마시지 않는 한 라면은 완전식품이었다. 그러나 이젠 안녕이었다.


오래된 자취생의 영혼은 안녕하지 못했다. 『편의점 인간』의 후루쿠라처럼, 나는 공부방 인간으로서 내게 먹이를 먹였다. 2022년 1-9월 평균 월 식비는 229,000원이었다. 하루 8,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 세 끼와 야식을 해결한 것이다. 2022년 10월, 일에 치여 자기 소진감이 한계에 다다를 무렵, 대체 내가 버는 돈이 얼마인데 내게 이런 걸 먹이는지 허망했다. 내게 맛있는 것을 먹이기 시작했다. 2023년 같은 기간 월 413,520원씩을 먹였다. 먹이가 영혼의 안녕함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만, 끼니의 때깔은 좋아졌다.


내 생활은 단순했다. 학원 아르바이트 하는 취준생처럼 살았다. 평일에는 아침에 도서관에 갔다가 저녁에 집에 오거나 공부방에 갔다. 가끔 도서관 대신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주말에는 공부방에 갔다. 2023년에 설을 제외하면 사람과 먹은 끼니는 열 번이었다. 그나마 친구 아버지 장례식 때문에 세 번이 추가된 것이었고, 8월 17일이 마지막이었다. 그야말로 무미건조. 미미(美味) 지향성은 쾌락의 가장 단순한 방식의 삼투작용이었을 것이다. 라면이 먹고 싶을 때, 짬뽕, 베트남쌀국수, 이스람식 쇠고기국수를 먹었다.


라면의 끝은 유통기한 열흘에서 보름 전쯤 인지했다. 어이가 없었다. 유통기한은 관례일 뿐, 라면은 내게 반영구적 식품이었다. 라면의 유통기한이 유의미한 시기가 오다니, 내가 지나치게 오래 산 모양이라며 실소했다. 왕년에, 삼시세끼 라면도 가능했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에 한 개, 별일 아니었다. 그러나 귀찮았다. 이미 어향새우볶음면이나 삼선짬뽕도 심심찮게 먹었고, 채소 섭취가 필요할 때 회덮밥을 먹기 시작한 다음이었다.


유통기한 사나흘을 앞두고 다섯 개를 겨우 해치웠다. 절반을 무찔렀으니 나쁘지 않았다. 막판 스퍼트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진부한 클리셰, ‘해치웠군.’에 적은 부활했다. 라면 다섯 봉지 한 묶음짜리가 시리얼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다시 열 봉지가 된 라면을 보고 있으니 전의가 꺾였다. 매일 아침 라면을 먹어도 미션 실패가 확정된 셈이었다. 유통기한 며칠 넘긴 라면을 먹는 데 거부감은 없지만, ‘미션 실패’가 지긋지긋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싸워나가는 건 내 일상이면 충분했다.


포기했다. 버릴 수 없어서 나누었다. 유통기한이 짧아서 나눔이라고 하기에는 미안하고, 민망했다. 당근이 확실했지만 일정 조율하기 귀찮았다. 유통기한 사흘 남은 아침, 한 묶음은 내가 먹기로 하고 나머지 한 묶음에는 유통기한을 밝히며 ‘드실 분 가져가세요.’를 이면지에 써 붙여 원룸 입구 우편함 위에 두었다. 그날 퇴근길, 라면은 그대로 있었다. 모른 척 놓아두고 집으로 올라왔기에 나는 라면을 버리는 중이었다. 쓸모를 버리는 죄의식은 여차하면 내가 먹겠다는 다짐으로 상쇄했다.


다음 날 아침, 나눔이라고 하기에는 하루 더 무례해졌지만, 배수진을 쳤다. 나머지 한 묶음도 들고 나갔다. 유동인구가 많은 근린공원에 둘 작정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라면 다섯 개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열 개는 생각 속에서도 물렸다. 둘 중 한 묶음은 어떻게든 되기를 바랐다. 그냥 버리는 건 계산속에 없었다. 멀쩡한 것이 버려지는 것을 싫어했다.


우편함 위 라면이 사라져 있었다. 늦은 밤에 있던 게 이른 아침에 사라져 어리둥절했다. 그 사이 누군가 오갔다면, 당신도 고단한 삶이겠구나 싶었다. 라면이 ‘아직’ 멀쩡해서 당신과 나도 ‘아직’ 멀쩡할 수 있을 것 같은 비합리적 상관성이 뿌듯했다. 얼굴은 모르지만 나와 같은 건물을 점유한 당신의 한 끼가 와이파이 거리에서 얼큰하길 바랐다.


조금 확신을 가지고, 공원 벤치에 나머지 라면을 두었다. 퇴근길에, 라면이 사라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낮의 공원을 지키는 노인들이든, 밤의 공원을 지키는 외국인들이든, 누군가의 끼니에 뜨끈한 수증기 사이로 내가 후루룩되어지는 상상이 제법 푼푼했다. 자원 재분배를 통해 라면의 한계효용이 극대화 된 합리성은 더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멀쩡한 것을 버리지 않았다!


무려, 미션이 완수되었다. 내가 내 의도대로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니, 그 효능감이야말로 나눔의 행위 동기인가 싶었다. 내가 나눈 것일 수 있게 해준 누군가가 고마웠다. 2023년 초 튀르키예 지진 때, 반 년 치 월세를 기부한 것보다 흡족했다. 고작, 라면 열 개가. 기부한 돈이 새삼 아까웠다.


2023년은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되었다. 한 번 높아진 입 높이가 낮춰지지 않는다. 스타벅스에 길들여지면서 카누가 싱거워졌듯 라면은 끼니 선택지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그리고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시시한 인생을 유지하는 가성비만 나빠진 셈이었다. 고작 내가 무려 어향새우볶음면을 먹어서 어쩌겠다는 건가, 혹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가. 버림과 나눔의 지분이 다투던 날, 나는 뭔가를 잃은 듯하다.


라면과 재회할 때, 나는 네게 무슨 말을 할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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