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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Jan 12. 2024

공병을 방치하는 정의

700원쯤은 그냥 버려도 되는 시대일까? 월세 25만 원 안팎의 원룸이 즐비한 동네에서, 그나마 외국인 노동자들이 원룸과 상가를 임대한 덕분에 지역 경제가 연명되는 동네에서, 먹고 살기 힘들지 않은 사람은 드물 텐데도 소주병 7개가 버려져 있었다. 번거로움을 쿨하게 처분할 수 있는 자본 권력의 맛은 꽤 괜찮은 해장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명품 소비처럼 과시로써 자기 권력을 발산하고, 낭비야말로 과시의 극치다.


초등학생 때 공병을 주우며 놀곤 했다. 친구들과 놀 시간이 어긋날 때, 혼자 노는 방식 중 하나였다. 평소에 하던 우표수집이나 여름 행사인 곤충채집과 다를 바 없었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재활용 쓰레기통을 뒤졌다. 5층짜리 주공아파트 100여 동이 밀집한 동네에 군데군데 재활용품이 정리되어 있어서 공병 줍기는 수월했다. 소주병 20원, 맥주병 30원 하던 시절이었다. 100원짜리 델몬트 병은 희귀템이었다. 공병으로 번 돈은 엄마한테 자랑하고 모두 저금했다. 획득한 돈의 크기는 그날의 점수였다. 공병 줍기는 내게 조금 무거운 ‘포켓몬 고’였던 것이다.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 살면서 돈을 버리는 모순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은 사람들이 고마웠다. 덕분에 나는 세상의 모순을 해결하는 정의의 사자라도 된 듯 당당해졌다. 망토를 휘날리든, 쫄쫄이 수트를 입든, 지구를 지키는 것은 초등학생 남자 아이의 로망이었고, 나는 비효율이라는 침략자로부터 우리 동네를 지켰다. 그 나이의 아들이 있어도 될 만한 나이가 된 지금, 공병을 줍지 않음으로써 정의를 실천했다. 소주병 7개가 절실한 것은 폐지 줍는 노인들이었다.


이곳은 노인들이 살기 적합한 동네였다. 서울 쪽방촌 월세가 25만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20만원 미만의 월세는 초월적 복지였다. 그 비용에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가스보일러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외국인 청장년 노동자만큼 한국인 노인이 많았다. 인근 근린공원의 낮은 야외 노인정이었다. 모든 노인이 폐지 줍는 일을 직업화 한 것은 아니지만 노인들은 습관적으로 폐지나 공병을 주웠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노인도 재활용품 수거지 ‘유리병’ 앞을 서성이곤 했다.


지금도 공병을 버리는 습성이 이해되지 않는다. 돈을 벌어 돈을 버리는 플렉스는 아등바등 사는 인간의 과시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된다면, 최소한 살기 힘들다고 투덜댈 자격이 없었다. 술자리에서 교환되는 보통의 한탄들을 생각하면, 공병은 낭비가 아니라 투덜거림이 덕지덕지 묻은 게으름이었다. 성실하지 못한 습성에 동의할 수 없었다. 게다가 비주류(非酒流) 인간으로서, 혼술은 흡연만큼의 자기 학대였고, 누군가와 방에서 같이 마신 것은 그만큼 소음을 생산했을 테니 이웃 학대였다.


전직 동네 방위대로서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공병은 본의 아니게 분배 정의에 기여했다. 소주병 7개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희귀템이었을 것이다. 아등바등 사는 사람이 배설한 것이 똥구멍 찢어지게 빈곤한 사람의 생계가 되는 서글픈 한계효용은 원활했다. 이 생태의 시발점, 공병 아까운 줄 모르는 경제관념이 이해되지 않은 채로 수용되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고마운 사태가 새삼 어리둥절했다.


이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생태일 것이다. 공부방 인근에도 폐지 줍는 노인들이 많았다. 이곳은 대구경북 의사 70%가 살고 있다는 ‘~카더라’가 제법 납득되는 동네다. 원룸이나 단독 주택보다는 고급 아파트 단지로 채워져 있어서, 원룸촌 내 재활용품 수거지처럼 잘 차려진 밥상은 거의 없었다. 아파트 단지는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서 리어카가 들어갈 수 없었다. 울타리가 없더라도 경비원 선에서 막혔을 것이다. 물론 학원가에서 폐지 수급은 원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23년 12월 기준 신문지 1kg 128.5원, 골판지 1kg 76.4원을 감안하면, 공병이 보다 수월한 무게다.


우리 동네의 학생 김 씨, 샹 씨, 노동자 이 씨, 응옌 씨, 무하마드 씨들은 또 술을 마실 것이다. 술 살 돈이 있는 한, 그저 마실 것이다. 애초에 무절제한 인간들이니 집에서 술 따위를 마신다고 비난하긴 힘들다. 사람을 무절제하게 굴린 것은 시장이었다. 시장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람을 쥐어짰고, 사람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시장을 버텼다. 그래서 술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나 공병을 그냥 버리는 것은 역시, 무절제하다. 내가 사는 숫자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병에서, ‘어린왕자’가 만난 술꾼을 생각했다. 술꾼은 자신이 술 마신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부끄러운 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술꾼은 공병을 팔았을까? 최 씨와 아크말 씨는 그냥 버렸는데. 최 씨와 아크말 씨가 버린 소주병 안에는 고향에 두고 온 노모의 고단함과 걱정이 고여 있을 것이라는 어쭙잖은 낭만은 집어 치운다. 당신들의 소행성은 바오밥나무로 잠식되었다. 그곳은 소행성이 아니라 바오밥나무 군락이다. 바오밥나무 군락에서 빈 솔병이 김 씨, 이 씨, 최 씨, 썅 씨, 응옌 씨, 무하마드 씨, 아크말 씨의 이름은 같다. 소주나 맥주, 혹은 공병 씨다.


출근길에 본 소주병 7개는 퇴근길에 없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수거해 갔을 700원 안에, 라면 한 개만큼의 온기라도 있기를 바란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2022년 2월 기준)에 따르면 폐지 줍는 노인들은 하루 평균 11시간 20분 동안 12.3km를 걸어 10,428원을 벌었다. 시급 948원의 다른 이름은 골병일 것이다. 덕분에 소주, 맥주, 공병 씨들이 이름을 되찾는다. 자기도 모르게. 가장 가난한 산타가 주워가는 선물, 공병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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