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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Mar 08. 2024

개 죽음의 양자역학

1 ÷ 3 = 0.3333……

0.9999…… ÷ 3 = 0.3333……

∴ 1 = 0.9999……


0과 0.0000……도 같으므로 공허는 무한하다.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0.9999……를 채우기 위해 마지막 자리 1을 향해 내달리는 0.0000……의 기분이 든다. 결코 닿을 수 없기에 영원한 0의 질주는 빛의 속도 같기도 하고, 멈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시간은 대체 언제적부터 달려온 빛인지 가늠도 안 된다. 생명 존엄성이 허망해진다. 인간이 우주의 티끌이라는 표현조차 오만하다. 지구의 티끌 인간, 태양계의 티끌 지구, 은하계의 티끌 태양계, 은하단의 티끌 은하계…… 몇 억, 몇 십 억 광년 너머의 반짝임에게 나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티끌의 티끌의 티끌의…… = 0.0000……’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티끌은 끝내 입자에 도달한다. 입자는 파동과 중첩되면서 0의 질주와 포개진다. 김춘수의 「꽃」은 거시세계 양자역학을 개론한다. 모든 존재는 이름이 불리지 않을 때 파동이었다가 이름이 불릴 때 입자가 된다. 입자는 질량으로서 실재다. 알레스카에 사는 김상덕 씨는 파동이었으나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이 찾으러 가서 입자였다. 단, 관측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입자였다. 슈가도 존재하지 않는 입자가 되었다. 그러나 존재하는 파동이었다. 듣지 말걸 그랬다. 파동의 진폭이 쓸쓸하다. 설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다.


슈가가 죽었다. 슈가는 농가에 혼자 살던 노인이 키우던 개였다. 농가에서 키우는 개들은 누군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갈 때면 맹렬히 짖었다. 묶여서 적개심을 드러내는지, 적개심을 드러내서 묶여 있는지 모르겠으나 짖는 개들은 대체로 묶여 있었다. 마당에 풀어 놓은 개들이 짖을 때는 대문 아래 코를 박았다. 그러나 슈가는 멀찌감치 숨어서 짖었다. 동생은 본가에 키우는 개를 산책시키다가 슈가의 파동에 끌려 갔다. 어떤 개인지 보려고 대문 안쪽을 들여다 보면 소리는 더 안쪽으로 도망가 관측되지 않았다.


동생은 간식을 나눠주며 슈가와 안면을 터나갔다. 슈가는 간식에 이끌려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서야 털이 하얀 것을 보고 동생이 제 마음대로 슈가라 불렀다. 시간이 지나며 슈가는 짖지는 않았지만, 거리를 내주지도 않았다. 동생이 자리를 뜨고서야 간식을 주워 먹었다.


동생이 슈가를 만졌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가 내 학생의 합격 소식을 동생에게 전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모든 세계와 안면을 틀 필요는 없었다. 파동으로 직조된 우주를 모두 관측할 기력이 없었다. 각자의 소우주에 소행성무리처럼 빼곡한 입자를 소화하기도 정신 사납다. 바쁠수록 알 바 아닌 것들이 많아졌다. 살아가는 인간에게 우주는 ‘비로 쓸어 낸 먼지나 티끌, 또는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릴 물건이나 내다 버린 물건’에 수렴해 갔다. ‘나’는 입자 하나의 중력권 중심에서 온 우주를 쓰레기처럼 두른 블랙홀이었다.


노인이 죽었다. 자식들이 노인의 짐을 정리했다. 슈가는 낯설디 낯선 자식들로부터 도망다녔다. 노인의 자식들은 슈가가 동생에게 그나마의 거리를 내주는 모습을 보고 슈가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데려가길 포기했다. 나는 동생과 슈가의 정확한 ‘거리’는 굳이 묻지 않았다. 슈가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와 슈가의 거리는 1,344광년 떨어진 m42성운과 다르지 않았다. 성운 전체의 붕괴보다 내 학생의 당락이 중요했다.


슈가는 죽어서야 별자리처럼 구체적이었다. 슈가는 한파가 오던 무렵 아팠다. 슈가의 집 앞에는 토한 흔적이 있었다. 슈가의 입 안은 뜨거웠고, 삼키지 못한 사료가 뭉쳐져 있었다. 엄마는 슈가의 입 안에서 사료를 파내고 항생제를 먹였다. 열은 떨어졌으나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병원에 데려가는 일에는 행정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상 버려진 개였지만, 행정적으로는 집주인 소유물이었다. 소유할 사람이 없는 소유물은 집 밖으로 꺼내어질 수 없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슈가가 죽었다. 앞 발을 모으고 그 위에 턱을 괸 채였다. 슈가의 모습이 엄마는 너무 예뻤다고 했다. 너무 외로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숨처럼, 한 숨이 꺼졌다고 했다.


노인이 죽은 후에도 슈가는 계속 그 집에서 살아왔다. 동생이 그 집을 사하려 했으나 땅이 세 사람에게 걸쳐져 있어서 사태가 복잡했다. 집 근처에 큰 도로가 뚫릴 예정이라 아무도 땅을 팔려 하지 않았다. 언젠가 오를 땅값 덕분에 슈가는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 공간에 혼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동생과 엄마가 챙겨주는 사료에 의존하며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블랙홀은 파장뿐인 공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가는 사건의 지평선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멈춰버린 시간이었다. 시간의 이름은 노인이기도 했고, 슈가이기도 했다. 거시세계의 양자역학은 자아와 타아도 중첩되었다.


동생이 사비로 장례를 치르려 했지만, 불법이었다. 포기된 소유물도 소유권의 자장에서 썩어가는 사태만이 합법적이었다. 동생과 엄마는 동네를 수소문해서 노인의 딸 내외와 연락이 닿아서 만났다. 딸 내외는 노인의 마지막 유물을 책임졌다. 단, 슈가의 뼛가루는 동생의 3년 전에 죽은 개 짱이 옆에 묻었다. 외롭게 죽어 있던 뼛가루와 외롭게 살아 왔던 뼛가루가 나란했다. 뼛가루는 짱이와 슈가가 아니라 흙이었다. 죽음은 우주의 입자가 재구성되는 사소한 물리작용이었다.


질량 0이 만드는 파동은 사소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도 슈가의 파문이 남았다. 나는 보증금 70만 원에 17만원짜리 방에서 15년째 머무르는 중이다. 계약이 완료되면 16년을 채우게 된다. 이 방은 내 인생의 사건의 지평선 같았다. 내 죽음에도 엄마는 같은 말을 할 듯했다. - 얼마나 예뻤는데, 얼마나 외로웠겠노. - 시공간은 참 간사했다. 1,344억 년만큼 멀었던 슈가가 내 옆으로 당겨졌다. 슈가도 숨어가며 어떤 이야기를 짖어댔겠지만 번역되지 않았을 것이다. 0.0000……을 영원히 기다려야하는 0.9999……의 마지막 자리 1의 기분이 생명의 존엄성을 닮았다. 엄마처럼, 동생처럼, 슈가의 명복을 빌었다.


‘티끌의 티끌의 티끌의……’ 발악, 양자역학만이 희망이었다. 입자의 세계는 우주를 닮았다. 온통 공허다. 공허를 결합하는 매개로 입자가 끼어 있는 듯하다. 공허가 만져지는 것은 공허와 공허 사이의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 같은 감정 때문일 것이다. 감정의 물리학은 공감으로 귀결된다. 공감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다른 시간 속에서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슈가는 죽어서야 좀 더 많은 곳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나는 글자로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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