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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Jun 21. 2024

심리 치료 한 그릇, 회덮밥

필라테스 시간을 오후 8시 30분에서 오후 7시 30분으로 변경했다. 회덮밥 때문이다. 회덮밥이 중요한 이유는 필라테스가 끔찍하기 때문이다. 필라테스는 창의적 사디스트가 만든 고상한 고문법이다. 왜 내 돈 주고 이토록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이 불합리한 사태를 회덮밥이 맛있게 무마시켜 줬다. 필라테스를 마치고 1층 캐주얼 일식집에서 회덮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9시 30분에 먹는 밥은 야식이지만, 8시 30분에 먹는 밥은 늦은 저녁 식사다. 그 시간 저녁이면 야식을 생략할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기였다.


회덮밥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다이어트 최적 외식 메뉴였다. 공식 450칼로리보다 채소량이 중요했다. 외식은 ‘탄단지’의 독과점 시장이었다. 탄단지에 단-짠-맵을 덧씌워 영양-나트륨-당분 과잉을 합리화했다. 외식에서 초록을 볼 수 있는 메뉴는 드물었다. 채소의 초록빛은 데코레이션일 뿐, 맛있음과 초록은 대체로 반비례하는 듯했다. 초록이 보존된 밥상으로 쌈밥, 비빔밥이 떠오르지만, 대학 식당가나 학원가에는 없었다. 회덮밥은 현재 내게 접근 가능한 비빔밥이었다.


일상의 끼니가 희거나 빨갛거나 검기에 초록은 식사의 숙제다. 먹고 싶다기보다는 먹어 줘야 한다는 몸의 정언명령인 것이다. 나이 먹을수록 입으로 먹은 것들이 다음날 얼굴, 뱃속, 화장실에 낮은 별점과 폭언에 가까운 후기를 상세히 남기므로 정언명령은 강해졌다. 회덮밥 대접에 붕긋한 채소를 보면 도덕적으로 당당해졌다. 회의 신선도나 양은 둘째 문제였다. 채소라고 해봐야 상추 몇 장과 양배추 한 줌이겠지만, 밥알보다 많은 부피의 채소를 섭취한다는 입 안 가득한 사실감이 중요했다. 양념장 2/3만 넣어 잘 비빈 회덮밥을 한 입 가득 우걱우걱, 건강을 씹었다.


꼭 회덮밥이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그런 건 아니다. 저가의 비빔밥 전문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탄수화물 양을 줄인 자리를 채소나 버섯으로 채워 포만감 높은 저칼로리 끼니로 비빔밥 이상 가는 음식은 없다. 나물은 그때 그때 가장 저렴한 초록색이면 된다. 어떤 나물이든 몸에 좋은 성분 한두 개는 가지고 있고, 어차피 다른 끼니에서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과잉 섭취될 테니, 비빔밥 한 끼는 하루 식사의 면죄부다. 굳이 더 맛있고 싶다면 계란프라이나 참치 조금 더하면 그뿐이다. 사이드로 콩나물이나 미역 흔적만 남은 국물이어도 충분하다. 10분 이내에 끝낼 수 있는 3,000원짜리 아침밥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회덮밥이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그래야 할 때도 있다. 맛있다. 맛있는 것은 모든 것의 개연성이다. ‘고도’는 보쌈+냉면 세트나 치킨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침에 눈떠버린 우울은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기대감으로 잠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허망함을 버텨낸다. 순무 따위나 먹으니 자살을 생각하는 거다. 맛있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 한, 가벼운 우울은 유예된다. 동물성을 초월한 의지적 인간이고자 했지만, 나도 이 생물성의 자장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한 하찮은 존재였다. 느리지만 성실하게 살이 쪘다. 회덮밥은 맛있는 변명이다.


회를 좋아한다. 그러나 회를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속한 세계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싶어서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내 문법대로 설명해왔기에 조금 당황스럽다. 삼겹살, 짬뽕, 사과, 초콜릿은 맛과 나름대로의 호불호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회의 무엇이 좋은지는 설명이 안 된다. 회는 초장을 먹기 위한 질감체인 듯했으나 그 질감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덜 물렁물렁하고 더 물렁물렁한 차이를 초장 맛으로 먹었다. 좋아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이 맛있을 때마다 지적 배덕감을 느꼈지만, 맛있는 건 역시 속수무책이다.


필라테스 직후는 민트초코도 싱그럽게 핥을 수 있을 때였다. 통증에서 해방되며 뻣뻣했던 근육이 뭉글뭉글 풀렸고, 땀도 촉촉히 흘렸다. 무엇보다도 늦은 점심 먹은 지 여섯 시간 안팎으로 적당량의 허기가 충전된 상태였다. 게다가 8시 30분, 마감을 앞둔 식당은 아무도 없거나 한두 테이블 고작인 최고의 인테리어도 준비되어 있었다. 조용히 내 밥 먹을 수 있는 한적함은 초밥의 단순함을 닮아서 좋았다. 내게 회덮밥은, 야채를 풍부하게 곁들인 초밥 비빔밥이다. 직원들 사이에 둥둥 떠 있는 저녁 피크를 쳐낸 한가함과 마감을 기다리는 설렘도 내 밥맛에 비벼졌다.


회덮밥은 주문 즉시 조립되었다. 주문 받은 알바생이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1-2분 만에 갖고 나왔다. 오픈 주방에서 작업복을 갖춰 입은 사내가 초밥을 빚었으니, 주방 안에서는 썰어 놓은 회와 야채를 비전문가가 햄버거처럼 조립했을 거라는 추론이 억측은 아닐 듯했다. 상추 끝이 약간 말려 있는 만큼 회도 썰어 놓은 지 꽤 되었겠지만, 어차피 양념장에 비벼 놓으면 식재료의 지엽적 사실은 양념장에 도포되어 본질만 물렁물렁 두드러졌다. 회덮밥은 밥과 날생선과 채소의 상큼한 곱셈이다.


살다 보니 필라테스가 필요할 정도로 보람 없는 몸뚱이를 가져버렸다. ‘할 수 있다’의 세상은 절대다수가 패배자로 귀결되고 만다. 삶에 도전했던 습관 혹은 열정은 무력감, 열등감으로 일그러지고, 보상심리로 발산되는 처묵처묵은 힘이 세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이 부끄러운 몸으로 결산되다니, 나는 참 별로다. 그래서 자기파괴적 감정을 담아 우악스럽게 먹었다. 내 몰품 없는 살도 물렁물렁했다. 스마트폰 덕분에 10분쯤 걸릴 뿐 먹는 데 집중하면 5분 컷이다. 가볍고 맛있는 마침표라면 인생은 몰라도 하루치 무용함에는 눈감을 수 있었다. 심리치료 한 그릇, 저녁 8시 30분의 회덮밥이 우리 동네는 10,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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