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회장은 얼마나 먹었을까. 회장 일가가 먹은 오뚜기 3분 카레보다 나 혼자 먹은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식탁에 자사의 3분 카레가 오를 일이 있기나 할까. - 식단의 빈부 격차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부에 맞는 식사는 분배 정의다. 그저 내 20~30대 식단을 지켜준 3분 형제들에게 감사하고 싶을 따름이다. 덕분에 맛있었다.
밥만 주던 고시원에서 살던 시절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둔 카레와 짜장의 3분 형제를 보고 있으면 흐뭇했다. 3분 형제의 재무제표를 보는 회장의 심정도 그랬을 것이다. 3분 형제들이 있는 한 내 식단의 재무제표도 맛의 흑자를 기록했다. 따뜻한 밥에 3분 카레나 짜장을 비비면 김치 하나로도 한 끼가 초라해지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고시원에서 이어폰을 끼고 스타크래프트 경기 영상을 보며 먹는 끼니는 궁상맞았지만 당시는 꽤 괜찮은 한 끼였다.
그게 뭐가 맛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러게 말이다. 맛의 경험이 부족해 진짜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식성이 무난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엄마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솥 단위로 카레나 짜장을 끓여 주시곤 했다. 그것도 역시 오뚜기였으니 3분 형제는 엄마 손 하위 호환쯤 되었다. 계란 프라이 하나라도 추가되면 고시원 골방의 식사는 집밥에 준했다.
‘3분 쇠고기 카레/짜장’과 그냥 ‘3분 카레/짜장’이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동네 할인 마트 행사가로 전자가 700원일 때 후자는 1,000원을 넘어갔으므로 전자만 샀다. 검색해 보면 전자는 건더기가 더 들어가고 후자는 열대 과일 퓌레가 들어가 향이 진하다고 했다. 최근에야 당근마켓에서 700원에 산 후자를 먹어봤다. 나는 풍미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애초에 내겐 풍부한 씹을 것이 적정 음식이었다.
고시원 시절 3분 형제들은 500원이었다. 요즘은 건더기나 퓌레 구분 없이 1,200원 안팎이고, 동네 할인 마트 행사가로 890원까지 떨어졌다. 행사할 때 각각 열 개나 스무 개씩 사두면 몇 달을 안정적으로 먹었다. 같은 기간 삼각김밥이 700원에서 1,000~1,500원으로 오른 것에 비하면 3분 형제들의 가격 상승률은 무난하다. 삼각김밥은 편의점 간 경쟁으로 미끼 상품 역할을 하느라 가격 상승 제약을 받지만 오뚜기 3분 시리즈는 시장 점유율 80%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과점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가격 상승률은 반시장적이기까지 하다.
3분 형제는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잘 어울린다. 여성의 식사는 열량 보충을 초월한 관계적이고 문화적 행위에 가깝다. 식재료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파스타가 짬뽕보다 더 비싼 이유는 여성은 열량과 맛에 추가적으로 문화 체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기 때문인 듯하다. 같은 이유로 떡볶이는 예쁜 옷을 입으며 비싸졌고, 태생부터 예쁜 디저트류의 가격은 예의가 없다. 남성의 식사는 보다 원시적이다. 맛있음의 기준치가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기준치를 적당히 넘기면 효용성이 중요해진다. 가격이 오르면 안 먹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17시간 후에 똥이 될 것, 아무거나 적당히 맛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식당 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손님군은 2030 남성이다. 빨리 먹고 빨리 나가고 시시콜콜 토 다는 일이 적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날 수 있다. 단, 나는 확실히 남성형 식문화에 가까워 3분 형제들과 궁합이 잘 맞았다. 3분 형제는 ‘적당히 맛있는’ 가성비를 충족한다. 무엇보다 3분이다. 본래 데우는 의미의 3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식사 시간 3분이었다.
당근마켓을 사용하면서부터는 3분 형제들의 실질 구매가는 더 떨어져 개당 500원 근처에서 매집 가능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트 할인가보다 더 싸게 파는 사람이 종종 있었고,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잘 먹지 않게 되었다. 자주 먹다보니 물려버렸다. 맛이 허전했다. 재고 소진율이 떨어졌다.
3분 형제들만큼 만만한 밥 파트너가 없었기에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3분 형제를 먹을 때 양배추나 양파를 볶거나 햄을 구워 넣었다. 나름 파격 조치였다. 자부심이 된 귀차니즘을 물리고, 도마와 칼을 쓰고, 라면이나 계란 프라이가 아닌 이유로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부엌을 독점할 수 있는 원룸에 살게 되어도 제 버릇 개 못 주고 부엌과 담 쌓고 살았었다. 그런 내가 ‘간편해서 좋은’ 근거까지 뒤집은 결단을 내렸지만, 내가 추가로 넣은 건더기와 3분 형제들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3분 짜장에 소면을 삶아 비벼도 짜장면 느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맛이 미묘하게 어긋났다. 카레와 짜장은 양배추나 양파 섭취를 위한 드레싱으로 변해갔다.
문득, 3분 형제와 조우한 지 석 달이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일이 바빠 어영부영 하는 사이 연락이 끊긴 친구를 떠올린 기분이었다. 굳이 전화를 하자니 번거로워 더 멀어질 것이 예감된다. 남은 여남은 개를 다 먹는 일이 의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내 20~30대 식단을 지켜준 녀석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해버렸다. ‘마이 무웃다 아이가, 고마해라.’, 친구를 졸업한다.
너는 누구라도 ‘맛’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맛’권 운동가였다. 덕분에 청춘, 그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궁색함 속에서 소소하게 맛있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을 버티고 이제, 너보다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정도는 사먹을 수 있는 돈도 벌었다. 가끔 네 생각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다 마주치면 눈인사 하는 정도지, 네가 먹고 싶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새로운 조리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당분간 안녕이다. 미안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