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음 없는 전쟁의 피해자

열 이레째 경남 울주군 신불산자연휴양림

by 박달나무

신불산에 계속 머물고 있다. 이곳이 워낙 마음에 들어 하루 연장해서 23일 오전까지 있기로 했다. 신불산자연휴양림은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시간을 트레킹을 해야 숙소에 닿을 수 있는 독특한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 구조 때문에 우리는 3박 4일을 숲 속에서만 지내야 한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구속’이라 말하리.

여러 유형의 숙소를 거치고 있다. 지난 일요일부터 검마산자연휴양림을 시작으로 산림청 산하 세 개의 자연휴양림을 잇달아 이용하고 있다. 신불산자연휴양림 다음엔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이다. 자연휴양림을 찾아다니는 일정이다 보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모두 산악 지형이다. 한반도가 울퉁불퉁한 산봉우리의 연속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좌를 높이 올리면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대평원 지역 같진 않지만 한반도에도 제법 평평한 지역이 있다.

산악지역 사람들의 식문화와 평야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식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디 식문화뿐이랴 칼을 나타내는 검(檢)과 도(刀)의 차이도 지리적 차이에서 왔다. 유럽과 같은 평야지대의 전투와 산악지대가 많은 동아시아 전투는 양상이 다르다. 평야지대 전투에서는 멀리 있는 적을 조금이라도 먼저 찌르려고 검(檢)이 필요하고, 산악지대 육박전에서는 베기 좋은 도(刀)를 사용한 것이다.

자연환경이 삶의 양식과 문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걸 인정한다면 역사 환경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리적으로 봉우리와 평지가 있듯이 역사적으로도 전쟁과 평화가 있다. 현대사에서 한반도는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지만 형식적으로 한국전쟁 이후 60년 동안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기였다. 환갑의 시간 동안 총탄이 쏟아지고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지난 2천 년 동안에 비추어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나온 60년을 바탕으로 앞으로 100년이든 200년이든 다시 한반도에서 대량살상이 일어나는 전쟁을 상상하지 않는다. 마치 평화가 영구적으로 정착될 것처럼 착각한다. 당연히 전쟁 없는 평화를 원하고, 평화에 기여하려는 모든 활동을 응원한다. 그러나 열전 없는 긴 기간이 만든 뒤틀린 문화가 있고 그에 따른 피해를 우리 아이들이 짊어지고 있어서 답답해하는 것이다.

개인의 색깔이 다양해진 것이다. 자연의 색깔이 다양한 것, 예를 들면 꽃 색깔이 다양하고 화려한 것은 눈에 띄는 색깔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진화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꽃의 화려함과 대비해서 씨앗은 검은색이나 회색으로 무채색이다. 씨앗은 가능한 발견되지 않고 땅 속으로 가라앉아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씨앗은 죽지 않고 다음 시즌에 되살아나는 것이 목표라면 꽃은 어떡하든 자신을 어필해서 선택받아야 하는 운명이다.

선배들이나 내가 씨앗과 같은 세월을 살았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꽃과 같은 운명이다. 꽃은 충매화인지 수매화인지 풍매화인지에 따라서 구조를 결정할 것이다. 충매화라면 벌과 나비에게 구애하기 위해 서로 다른 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한다.

살아남는 게 목표일 수 없고 선택받는 게 목표가 돼버린 것은 긴 평화의 산물이다. 전쟁이라면 화려한 색깔이 자살행위가 된다. 표적이 되는 것이니까. 죽을 걱정이 사라진 상태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것이 죽음과 진배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런 문화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부모에게 태어나 전쟁을 게임기 스크린에서만 인식한 어린이 청소년의 특징을 배태한다.

아이들의 무한경쟁, 곁에 있는 친구를 밟아야만 하는 적으로 만드는 일, 앞에서건 뒤에서건 1등을 해서 도드라지려는 것이 지금 여기 어린이 청소년의 특징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다.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될 정도로 빠지는 것은 게임 유저인 내 안위가 실제 세계에서 위협받지 않으면서 가상 세계에서는 상대방을 무한히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조건(현실에서 나는 안전하다/상대방을 계속 죽일 수 있다) 중 하나만이라도 제거되면 아이들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 역으로 산업의 커다란 축이 된 게임은 유저가 게임 속 캐릭터를 계속 죽여 버리도록 콘텐츠를 디자인한다.

게임이 아닌 실제 세계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가. 옆에 있는 아이들과 다르게 행동하려고 한다. 어쨌든 무리에서 두드러지려면 잘 한다는 칭찬을 받든가 아니면 정반대로 맹렬한 비난을 받으면 된다고 믿는다. 현재 어린이 청소년 문화가 그렇다는 말이다.

일단 아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개념이 없다. 죽음보다는 소멸이 절대로 피해야 할 상황이다. 물리적 목숨이 유지되는 건 기본인 세상에서 존재감 소멸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운명이 되었다. 어차피 물리적 목숨이 끊어지는 일은 안중에 없다.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려 자랑하는 아이들의 심리가 그렇다.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도 똑같다. 어릴수록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다. 항시적 칭찬을 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퇴행을 하는 징조가 뚜렷하다. 멀쩡했던 아이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든가 신체를 훼손해서 보호자의 위로와 케어를 받으려고 한다. 깨끗한 정리정돈보다는 어지르고 더럽게 하는 것이 훨씬 에너지가 덜 들면서도 관심을 끄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말투가 아기 같이 되고 발음을 뭉개서 어른이 잘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어른의 메시지를 차단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로 자신을 세팅한다.

종종 당황스러운 일은 아이들이 큰 부상이 아니면서 적당히 피가 나는 상황이나 석고붕대를 해야 하는 인대 염좌가 생기면 반가워한다는 것이다. 적당한 부상이 아이들을 밝게 만든다. 이걸 이해하지 못해서 오랜 시간 동안 헤맸다. 처음엔 공부나 숙제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함께 생활하니까 알게 됐다. 피가 나는 상황이나 석고붕대를 하는 상황이 남들과 다른 색깔로 자신을 치장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교실에서 돌아다니고, ‘더’ 큰 소리로 떠들고, 앞자리 앉은 아이 뒤통수를 때리고, 아는 욕을 동원해서 짖어대고, 작은 손해에도 대성통곡하고 운다. 그리고 “I got it(해냈어)”하고 뿌듯해한다. 이건 임상의학에서 명명하고 약을 먹일 일이 아니다. 사회의학에서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서 수행해야 하는 일이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매우 정치적 문제다. 처음부터 정치적 문제였고, 이후에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과 북한 핵개발 및 도발이 연결돼있다. 일부 언론에서 핵 무장한 북한이 미국과 맞짱 떠서 실익을 챙기고 다음 단계로 남한을 핵무기로 겁박하면 우리는 꼼짝없이 북한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 것이 어린이 청소년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 같은가. 아이들은 김정은 이름의 게임이 새로 출시된 것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리고 현실에서 김정은 놀이를 할 것이다. 핵무기에 비견되는 매개물을 창출할 것이고, 일부 천박한 언론의 해석대로 주변을 겁박하고 물리력을 행사할 것이며, 이를 말리거나 막는 어른을 북한이 미국 대하듯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정치적 감각을 도려낸 결과이기 때문에 매우 정치적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단 내 역할은 이 문제를 제대로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더 좋은 내일을 만드는 일은 대통령 시정연설에 어린이 청소년의 평화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 아이들이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하도록 하는 일을 주요 국정과제로 언급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달려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관계없이 비난 대상으로 소비되고, 그래서 도태되고, 결국 폐기 처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계속 소비/도태/폐기할 집단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건 폭음 없는 가장 잔인한 전쟁이다. 막아야 한다.

(2017.9.21)

keyword
이전 16화스승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