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10(수)
20km를 걸었다.
이제 걷는 몸으로 변한 듯.
힘들기도 하지만 관성에 의해 다리가 움직이며 걸어진다.
아이들은 이미 걷는 몸으로 변했다.
보야디야(Boadilla; 스페인어 ll(엘엘)은 y발음이라고 생각하고 발음함) 타운에서 알베르게 침대를 얻었다. 원래 호텔과 알베르게가 따로 운영됐는데, 호텔이 알베르게를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더라.
이제 일인 12유로는 감사한 가격이 됐다. 2019년에 걸었을 때 딱 한번 12유로 알베르게(산티아고 역 부근)에 묵으면서 부들부들 떨었는데, 스페인 물가도, 내 심장도 12유로에 고마움을 표하는 수준이 됐다.
두 아이는 오전에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당연히 천사의 아바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러블리 러블리~~
오후에는 달라졌다.
작은아이가 지루할 정도로 긴 밀밭 사이 길을 걸으며(작은아이는 걷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25km를 걸어도 힘이 남아도는 아이) 장난기가 발동…..(때론 <장난기> 아닌 다른 표현을 쓰기도)
걸음을 멈추고 힘들어서 못가겠다고 한다. 내가 (오늘만)두 번 안고 갔었다. 이번엔 내가 앞서 걷는라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여자 선생님의 목격담에 의하면, 외국인 순례꾼이 지날 때 작은아이가 한 말….
“My mom is Angry!”
라고 하며 울었다는 것이다.
아키데미 주연상 급 메소드 연기다.
외국인 입장에서 카미노에서 아이가 울면서 그렇게 대사를 치면 대충 이해하고 믿게된다.
내 생각은,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텐데, 어쩜 그 타이밍에서 엄마가 화가 나서 나를 버리고 저멀리 앞서 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영어를 곧잘 하네^^) 에서 혀를 내두르게 된다.
큰아이도 연기라면 자신감이 있기에, 작은아이에 뒤질 수 없는 법.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길 위에서 부들부들 떠는 연기를 하니,
독일인 30대 청년이 거꾸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추고, 아이의 안위를 살핀다.
”R U OK?”
독일 청년은 진정으로 아이가 걱정돼서 자전거에서 내려 아이를 살폈다. 내가 장난이고 아이는 문제 없다고 얘기하니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왜 거꾸로 자전거를 타냐고 물었더니,
“나는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해서 독일에 있는 내 집까지 가고 있다”
“야, 너 대단하다”
“응 나보다 내 자전거가 대단하지”
오늘 아침에 <훈화말씀>을 진하게 했더니, 약간은 효과가 있는듯….
두 아이 모두 환골탈태를 약속하긴 했는데, 오후에 다 깨졌다.
그래도 진전이 있다.
둘 다 조금 나아졌다.
공개 일기에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전보다 나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큰아이는 따로 데리고 다니면 세계일주도 하겠단다. 이번 카미노 걷기는 본의 아니게 비용이 예상보다 두 배 늘었다. 숙소 비용이 많이 오르고, 알베르게 잡기가 어려워 호텔이나 민박을 종종 이용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스페인 순례길처럼 잘 정비된 곳이 아닌 나라에서 모험에 도전하고 싶다. 아예 숙소의 도움 없이 개인 텐트를 지고 다니면 어떨까 싶다. 정말 지구 한바퀴 돌면 아이들 성장에 도움이 될까.
그런 얘기를 하니까 작은아이도 “나도 세계일주 하겠다”고 말한다.
얘네들과 세계일주하면 내가 사망한다. 짐을 지고 다닐 수 있는 몸무게가 안되기 때문이다.(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은 너무 어리다)
절대 절대 아이들 키우면서 과보호하면 안된다.
저녁 만찬에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식당에 모였다. 한국 사람들은 상당히 많은데, 한국사람들끼리 앉아서 먹는 경향이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는 좀 특별한 사정에 의해 우리끼리 테이블 끝자리에 앉았다.
내 옆에 아일랜드 노부부가 앉았다.
아일랜드 아줌마가 말을 건다. 너 영어 할 수 있어? 아 그래, 너희는 가족이니? 어디서부터 걸었니? 산티아고까지 완주할 예정이니? 너희 두 아들은 귀엽다. 아이들은 영어를 할 수 있니? 한국의 종교적 상황에 대해 말해줄래 등 자꾸 말을 시킨다.
내가 대충 얘기를 받았다.
아일랜드 아름답다는 말 많이 들었다. 영국과 아일랜드 중 어디가 생활 물가가 높냐? 아이들이 영어연수를 간다면 아일랜드 어디가 좋으냐, 가능하면 더블린은 피하고 싶다. 등등
그런데!
두 아이가 아일랜드 아줌마 간단한 질문에 척척 대답한다.
이름이 뭐냐 나이가 얼마냐 네 인형 이름이 뭐냐 네 인형은 어떤 동물이냐 너는 순례길 걷는게 행복하냐 오늘 저녁 메뉴를 즐기고 있냐 등등등
두 아이는 영어를 늘 쓰는 아이들처럼 즉각적이고 부드럽게 대답한다. 헐~
이런 아이들인 줄 몰랐다.
뭐 영어가 대단한 건 아닌데, 아이들이 훈련을 시키면 훈련 내용이 내면에 남는다는 건 유리한 조건이다.
난 훈련 안 시키려고 했는데…. 어쩔 수없이 귀국 후 강훈련이닷!!
전체 여정 중 40%는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