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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Sep 05. 2018

휴머니스트 고진이 쓴 철학의 재발견

철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휴머니스트 고진이 쓴 철학의 재발견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해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

마르크스의 말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의 이 말이 계속

생각났다. 고진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글을 쓰고 책을 낼까? 그것도 하나의 주제로. 세계사의 재해석을

통해 고진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 아니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 세상은 공상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회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다시 만들 수도 있는 사회다. 그 사회를 위해, 그 사회의 현실적 재구축을 위해 고진은 집요하게 역사와 철학에 천착하고 있다. 고진은 그 사례를 역사에서 찾고 그 사회의 진장한 의미를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테네와 이오니아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서 출발한다.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 (무지배)와 아테네의 데모크라시가 어떻게 다른지 이소노미아가 데모크라시로 변질되는 과정을 역사적, 사회경제적으로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탈레스 등을 비롯한 자연철학자 들에 대해 설명한다. 이후 소크라테스가 왜 사형을 당했는지를 이소노미아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자이면서 고진은 마르크스와 달리 하나의 이상적인 사회를 설정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애당초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가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로운 교환을 통한 개방적 사회다. 그런 사회가 이오니아에 있었다는 것이다. 철학은 바로 그 이오니아에서 출발했고 이오니아가 붕괴되기 시작했을 때 체계화되었다. 


이오니아에 대한 체계적 이야기는 이 책에서 처음 읽었다. 철학의 기원을 이오니아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출발한 것이 좋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구속받지 않는 삶이다. 철학은 그런 삶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에게는 매번 다이몬(정령)이 나타나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은 자질의 소유자는 현재도 드물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특이한 것은 다이몬이 명령한 사항이 특이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공인으로써 활동하는것을 금지한 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민회에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민회에 가는 것은 아테네 시민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그런데 다이몬이 그것을 방기하라고 하는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민회에 활약할 때에야 비로소 어엿한 시민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부자의 자제들이 소피스트에게 돈을 주고 배운 것은 민회에서 훌륭히 행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이몬은 민회에 가지 말고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명령한다.그래서 소크라테스가 택한 것이 아고라(광장, 시장)에 가는 것이었다. 민회가 공적인 장인데 반해 광장(아고라)은 사적인 장이다. 하지만 그곳이 그저 사적인 곳만은 아니다. 민회 이상으로 보편적으로 열린 장소이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오늘날 직접민주주의로 불리며 종종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것으로 간주된다. 민주주의란 바로 데모스=시민의 지배이다. 그런데 여성, 외국인, 노예는 민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데모스'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대거 광장에 있었다. '정의'는 오히려 거기서 발견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광장에 나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서문에서 


- 민주주의(데모크라시)의 기원과 모범으로 숭상받고 서양 정치사상의 고향으로 여기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이미 '어떤 것'이 타락한 제도이다. 데모크라시가 'cracy'인 한 지배체제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자유와 평등이 늘 모순을 일으킨다. p xx


- 기원전 6세기전까지 이오니아의 도시국가들에서는 민주주의보다 우월한 정치형태인 이소노미아(isonomia 무지배)가 실행되고 있었다. pxx


이소노미아는 이동이 자유롭기에 평등이 가능했고, 독립자영농들의 노동을 중시하고 상공업이 발달했다. 반면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자부담 중장보병)농민-전사 공동체였기에 가부장적 씨족제에 얽매였고 노동과 기술을 천시했으며, 여자 외국인 노예는 시민이 될 수 없었다. pxx 


- 탈레스..엠페도클레스..피타고라스..에피쿠로스에 이르는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은 이소노미아의 사상적 표현이다. 우주 만물의 생성과 운동을 제우스 아폴론같은 신이 아니라, 근원적 물질(아르케: 물 불 공기 흙..)의 운동으로 설명하는 자연철학은 종교적 씨족적 위계질서와 지배-피지배 사회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사회원리인 이소노미아를 회복하려는 '사회철학'이기도 했다. 자연철학자들 대다수는 실제로 이소노미아를 회복하려 투쟁했고 그를 위한 학파(엘레아 학파 등)와 교단(피타고라스)을 만들기도 했다  pxx


(같은 화폐경제 하에서) 이오니아에서 사람들은 전통적인 지배관계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런데 거기서 이소노미아는 그저 추상적 평등성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실제 경제적으로도 평등했다. 화폐경제가 발달했지만, 그것이 빈부의 격차를 가져오는 일이 없었다. 일단 간단히 말하면, 이오니아에서 토지가 없는 자는 타인의 토지에서 일하는 대신에 다른 도시로 이주를 했다. 그러므로 대토지소유가 성립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가 '평등'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에서는 화폐경제의 발전이 심각한 계급대립을 가져왔다. 많은 시민이 채무노예로 전락했다.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스파르타에서는 화폐경제나 교역을 폐지하고 경제적 평등을 철저화했다. 그것은 '자유'를 희생하는 것이었다. 한편 아테네에서는 시장경제와 자유를 유지한 채로 다수인 빈곤계층이 국가권력을 통해 소수의 부자로 하여금 부의 재분배를 하도록 강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아테네의 데모크라시이다. p 41 


이처럼 우선 한 번은 권력의 집중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데모크라시가 본질적으로 지배 cracy의 한 형태라는 것을 증명한다. P 49 


윤리란 개인이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계가 있다. 하지만 공동체에 내속된 상태에서 진정한 의미의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으로부터 나왔을때 비로소 인간은 개인이 된다. 그때 처음으로 '자기'가 발견되고, 또 '윤리'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리나 자기의 문제가 등장한 것은 우선 이오니아에서다. 동시대의 아테네에는 그와같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개인은 씨족적 단계 이래의 공동체로부터 자립해 있지 않았기 떄문이다. p xx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 많이 있는데 피곤해서 이만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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