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토일월화수.
인천공항 출국자가 역대 명절 중 최고라는 뉴스를 보니 설레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가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연휴 동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메모장에 쭉 적어 보았다.
해야 할 일(소요시간)
1. 가족과 시간 보내기 (2일)
하고 싶은 일(소요시간)
1. 데이터 분석 온라인 강의 듣기(10시간)
2. 이틀에 한시간씩 운동하기(3시간)
3. 부동산 공부하기(2시간)
4. 우쿨렐레 한곡 연습하기(2시간)
5. 여름 옷 정리하고 가을옷 꺼내놓기(2시간)
6. 완결된 웹툰 다시 한번 정주행하기(4시간+a)
아 또 시작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계획을 세워 놓고서는 실패하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책하는 버릇. 남들은 빨간 날만 보면 놀러갈 궁리를 하느라 바쁘다는데 나는 왜 고3 수험생이나 세울법한 스케쥴로 노는 것도 무리하게 하는 것인가.
추석은 일년내내 지은 농사의 결실을 맺는 날이라는데, 나 또한 일년에 고작 15일 가진 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직장인인 주제에 놀기는 커녕 공부하고 운동할 생각을 할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생산적이거나 의미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왕에 노는거 27평 집 안에서만 노는게 아니라 고속도로 타고 어디 멀리 나가거나 비행기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할 것만 같다. 놀고나서 인증샷은 필수.
모든 행동에 성과측정을 하고, 여가 시간에도 성취감을 추구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이다. 돌이켜보면 밤새 게임에 빠져있던 중학생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중간고사를 망친게 지금의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혹은 떨어진 점수와 오른 레벨업 중에 어떤것이 나에게 큰 가치를 주었는지도.
시급이 오르는 것처럼 내 시간의 가치도 점점 올라가는게 아니라면,
그리고 지금 니가 열심히 계획해봤자 어차피 웹툰이나 보면서 빈둥댈꺼라는걸 알고 있다면,
누가 나에게 니 인생 마음껏 낭비해도 괜찮다고 해 주었으면. 좋겠다.
행복한 추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