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단 둘이 떠난 제주 여행의 컨셉은 ‘애쓰지 않기’였다. 내내 집에만 있기가 너무 답답하다며 비행기타고 제주도 가고 싶다고 보채는 아이가 안쓰럽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일이다 시험이다 저마다 떠나지 못할 사정이 있는 남편과 큰 아이도 걸렸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나의 컨디션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집에서의 루틴한 일상조차 버거울 만큼 휘청이고 있었다. 나를 치유해보겠다고 작정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믿었던 1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를 부족한 존재라 여기며 버려지지 않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보며 노심초사 안절부절하고 있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인 자신에 대한 실망과 이런 상태로 남은 삶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해일처럼 덮쳐 왔다.
그래도 아이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힘을 내 봐야지 맘을 먹어보지만 좀처럼 기운이 차려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전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금 나의 상태에 솔직해지는 것뿐이었다.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아이가 여행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딸, 여행가고 싶은 네 마음 너무 이해가 가.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지금 좀 힘들어서 여행가도 많이 돌아다닐 수는 없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괜찮아. 괜찮아. 나도 많이 돌아다니는 건 싫어. 그냥 비행기 타고 멀리 가고 싶어서 그래.”
“알겠어. 그러면 우선 아빠랑 오빠랑 상의해 보자.”
남편과 아들에게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둘 다 본인들은 걱정 말고 흔쾌히 다녀오란다. 바로 항공권을 예약하고, 숙소는 난생 처음 게스트하우스로 잡았다. 돌아다닐 기운이 없으니 숙소체험이라도 하자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준비는 이걸로 끝이었다. 나머지는 신께 맡기기로 했다.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더 이상을 어찌 해볼 여력이 없었다. 비행기를 타러나가는 내 유일한 목표가 무사귀환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기왕 이렇다 할 계획없이 무작정 떠나온 여행이니 이곳에서 만큼은 ‘해야 하는 일’은 모두 내려놓고 가슴의 소리, 몸의 소리에 충실해 보기로 했다. 쉽지는 않았다.
아이도 이제 열두 살, 엄마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따라다니던 시절이 언제 있었냐는 듯 제 방문 닫고 들어가면 부를 때까지는 있는 줄도 모를 만큼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나이였다.하지만 막상 제주까지 와서 방 안에 있겠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좀 당혹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오기 전부터 너무 겁을 줬나? 그래서 애가 엄마 힘들까봐 그러는 걸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더 보고 듣는 게 좋지 않을까? 어떻게든 달래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이런 저런 생각이 올라왔다. 하지만 아이는 단호했다.
“엄마가 내 가슴에 충실해보라면서. 나는 지금은 방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내 걱정 말고 엄마는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 안 돼?”
그렇게 4박 5일간의 일정 중 사흘 오전을 오롯이 혼자서 보낼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이런 시간이 가능하다니.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꿈만 같았지만 막상 자유시간이 주어지니 반가움보다 막막함이 먼저 밀려왔다. 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자 하고 싶은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에는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가 기뻐할 것 같은 ‘바다 앞 드로잉 까페’를 답사하며 아이에게서 돌려받은 시간 첫 자유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흐뭇함으로 살아온 세월의 관성이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다녀온 ‘미술관 까페’에서 뜻하지 않게 붓을 잡게 되면서 나를 옴짝달싹 할 수 없게 하던 두려움 한 뭉텅이를 녹여낼 수 있었던 덕분이었을까?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해 가고 싶은 곳이 떠올랐다. 몇 해 전 제주여행에서 시간이 안 맞아 문 앞까지만 가고 들어가 보지 못했던 천년의 숲 비자림이 궁금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아이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몇 번 권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결국 재미있게 다녀오라는 딸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홀로하는 여행은 숙소를 빠져나온 첫 발자국부터 시작되었다. 가는 길부터 오롯이 내 리듬에 따라 움직이고 멈추며 호젓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비자림 숲길은 천천히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던 묶은 긴장을 풀어내 주었다. 하루라도 빨리 ‘함께하기만 해도 치유가 일어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에 몸 달아 안달하던 시간들이 떠올라 잠깐 얼굴을 붉혔지만 곧 편안해졌다. 마침 불어온 바람에 ‘나도 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는 걸’하는 숲의 다독임이 담겨있는 듯했다.
사흘째가 되자 아침을 맞기도 전에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해녀박물관’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라 며칠간 근처를 오가며 여러 차례 표지판을 보기는 했지만 전혀 끌리지가 않았다. 억척스럽게 제주의 살림살이를 일궈온 여인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쩐지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비자림에서 돌아온 오후 딸아이와 함께 나간 바다에서 소라게와 작은 물고기와 따개비들을 깊이 만나고 나자 그녀들이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다가 전해주는 생명의 소리를 평생 들어온 여인들의 삶이 진심 궁금해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