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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Jun 04. 2021

내 몸에게서 온 편지

요가가 글쓰기를 만날 때

“지금까지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이완감을 느꼈습니다.”


“몸과 마음이 시원하게 청소된 느낌이예요.”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개운한 기분이 들어요.”


“수련 직전까지도 어깨와 허리에 통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편안해요.”


“전신 마사지를 받은 듯한 느낌이예요.”


1시간 반의 인요가 수련이 끝난 후 수련 나눔으로 글쓰기 세션을 열었다. 어디서나 인요가 수련을 하고 나면 흔히 나오는 반응이다. 나 역시 바로 이런 매력에 끌려 인요가 수련을 나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품었으니 말이다. 인요가 수련을 통해 그 낯선 감각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분명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행복감’이었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이루어 냄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놀라운 평화를 내 몸 하나 겨우 뉘일 수 있는 작은 매트 위에서 내 몸에 가장 친절하고 편안한 자세를 선택함으로써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렇게 수련을 마치고 요가원을 나와 만나는 세상은 그 문을 들어가던 한 시간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요가를 중심으로 삶의 우선순위가 재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이 아름다운 요가 수련에 글쓰기를 연결할 마음을 먹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복감의 ‘자기주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훌륭한 안내자를 만나 그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긴 결과로 주어지는 ‘행복감’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때라면 (매트 안에서 만이 아니라, 매트 밖 일상 속에서도) 언제라도 그 평화에 접속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의 ‘본질’을 알아내야만 했다.


‘내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그 평화는 도대체 어떤 원리로 나에게 주어지는가?’ 인요가 수련 후 이어졌던 글쓰기 세션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찾아낸 답변서였다.


“인요가 수련 중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감각을 재경험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어떤 자세를 선택하셔도 좋습니다. 단, 이 시간 동안에는 다섯 가지 몸의 감각뿐 아니라 또 하나의 감각인 ‘생각’까지 완전히 허용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자세 안에서 찾아오는 모든 자극들을 마치 생태학자가 된 듯이 정성스럽게 관찰해보겠습니다.”


주도적으로 선택한 자세로 명상을 마치고 난 후에는 명상 중 관찰한 것을 묘사해 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오직 나만 볼 글이니 어떤 검열도 없이 만난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자고 했다. 충분히 쓰는 시간을 가진 후 각자에게 자세를 선택한 이유와 선택한 자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늘 편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선택의 순간이 오면 불편함을 선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불편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내 몸에 늘 머무르는 통증을 탐구해보고 싶어서 통증을 만들어냈던 자세를 선택했어요. 늘 피하고만 싶던 통증이었는데 적극적으로 탐구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조금 다른 느낌으로 통증을 만날 수 있었어요.”


“가장 편안했던 자세를 선택했는데 몸이 편해지니까 고요해졌던 머리가 다시 번잡스러워졌어요. 부정적이고 어두운 생각들이 올라와 힘들었습니다.”


“그냥 쉬고 싶은 마음뿐이라서 이완자세를 선택했는데 명상이 끝나는 싱잉볼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깊게 잠들었어요. 절대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제 삶의 화두인 균형에 대한 탐구를 해보고 싶었어요. 명상 내내 머리로 균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만 알게 되었어요.”


“볼스터를 이용한 트위스트의 편안한 느낌이 좋아서 선택했는데 3분할 때는 기분 좋게 느껴지던 감각이 시간이 길어지니까 불편함으로 변하는 것을 봤어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경험에 개입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그건, 이래서 그래요. 이건 저래서 그래요.’ 그간 인요가가 만들어주는 평화의 본질에 대해 탐험하면서 알게 되었던 것들을 나눠주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숨을 고르며 그 충동을 놓아버리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보다 더 깊은 지혜가 그들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기억해냈기 때문이었다.


“인요가는 건, 인대 등 단단하고 드러나지 않아 쉽게 변화시키기 어려운 조직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수련법입니다. 치아교정과 견인치료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작고 미세한 변화를 꾸준히 지속해 가다보면 어느샌가 원하는 변화를 만나게 되잖아요. 변화의 열망과 변화에 대한 저항을 모두 받아들이고 그 열망과 저항의 경계를 다뤄가는 것이 인요가 수련의 핵심입니다.


첫 번째 세션에서 말씀드렸던 인요가 수련의 세 가지 원칙을 기억하시죠? 첫 번째 몸의 저항을 세심히 탐험한 후 적당한 깊이를 선택해 들어간다. 두 번째 충분한 시간(육체적 몸의 경우 3~5분)동안 유지한다. 세 번째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유지하는 시간동안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반응을 고요히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것이 육체적인 몸에만 적용될 리 있을까요?


오늘 두 번째 세션에서는 각자가 원하는 변화를 막는 더 깊은 차원의 몸에서 일어나는 저항을 탐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글은 그 저항의 양상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사진과 같은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굳이 글로 기록하는 것은 가시화시켜야 비로소 다룰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트위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우리 안의 저항을 다뤄낼 수 있다면 매트 밖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매트 위에서 누렸던 그 평화를 일상 속에서도 누릴 수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오늘 소중한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아난다 인요가 수련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요가와 글쓰기를 통한 변화경영, 자기돌봄, 몸챙김 명상 워크샵이 끝난지 또 이틀이 흘렀다. 준비과정 자체가 오롯이 나 자신을 수련이 되어주었던 수업을 마치고 그 여운을 따라가며 나도 모르게 수업을 복기해 본다. 그렇게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가다 보니 수업에서 미처 전하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서랍 안에서 아껴두었던 편지지를 꺼내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미옥에게’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 안의 내밀한 그것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나눈 수련의 진짜 이유는 바로 이 편지를 받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오직 지금 여기의 나를 위한 사랑과 지혜의 메시지, 그것을 필요할 때마다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만든 수업의 진짜 의도였다는 것도.


그렇다. 이 편지는 수업에 함께 했던 분들을 위한 애프터 서비스다. 수련에 함께 했던 당신이라면 잠시 짬을 내어 '사랑하는 OO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띄워보길 권한다. 더불어 초보명상가의 정성스런 A/S가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일으켜 줄 사랑과 지혜가 절실한 당신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 세상에는 이렇게 그것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소식이 당신에게 또 다른 가능성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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