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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Jun 04. 2021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In Yoga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깨워내는 수련


“그러니까 나는 엄마랑 얘기하면서 같이 밥먹고 싶었던 거라구!”


지난 주 목요일이었다. 함께 밤 한강을 걷던 도중 딸아이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날은 이제는 루틴처럼 자리잡은 목요 홈인요가가 있던 날이었다. 단순히 몸수련만을 목적으로 하는 수업이 아니라서 수련을 통해 얻는 체험을 일상과 연결하는 작업들을 하다보면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기기가 일쑤였다.


시간엄수가 좋은 수업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도 묻지 않기에 대답할 기회조차 없던 질문과 정성을 다해 귀기울여주는 청중을 만난 우리는 자꾸만 시간을 잊어버렸다. 여기서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끊어버리면 언제 또 다시 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단 한번쯤이야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했던 거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자신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마칠 거라는 약속과는 달리 한참 무르익어있는 분위기에 아이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손님들이 돌아가자 아이는 그제서야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속도 안 지킬 거면 이제 집에서 요가 하지 말라고. 손님들이 계시면 편하지가 않다고. 그래서 너무 피곤하다고. 여기가 엄마 혼자 사는 집이냐고. 엄마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는 그렇게 잘 들어주면서 왜 딸이 하는 얘기는 들을 생각을 안 하냐고. 밥을 차리면서 아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다가 장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엄마가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그 일인 것을 알면서, 그것도 일주일에 딱 하루, 아니 반나절인데 고작 자기 밥시간 좀 늦어진다는 이유로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이 너무 섭섭했다.


엄마는 도대체 얼마나 더 너희들을 위한 5분대기조로 살아야 한다는 거니? 일주일에 딱 반나절 정말로 하고 싶은 일도 맘껏 편하게 할 수 없는 집을 엄마는 뭐 하러 그리 정성들여 쓸고 닦는 거니?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너희를 위해서 그것도 못 해주냐고? 그게 그리도 억울한 거냐구? 그건 아니지만, 너희들이 편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돕는 것도 너무나 기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어찌 할 줄 몰라 애궂은 길바닥을 부러 쿵쿵 굴러가면서도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아이가 좋아하는 빵집을 향하고 있었다.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던지 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장바구니를 열어 제가 좋아하는 간식을 꺼내놓자 아이표정이 또 한층 밝아진다. 여전히 굳어있는 내 표정을 살피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도 산책 가는 거지?”


“그럼, 가야지.”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이는 자기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늦어서 아침도 못 먹고 나갔는데 급식도 맛없어서 제대로 못 먹고, 미술학원에서 그림까지 그리고 났더니 정말 배가 너무나 고파서 집에서 편하게 밥 먹을 생각만하고 있었는데 집에 왔더니 손님들이 아직 계셔서 속이 상했단다. 그런데 엄마는 자기가 들어왔는데 반갑게 맞아주지도 않고 금방 끝난다고 해놓고 자꾸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말만해서 너무나 섭섭했단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엄마한테 짜증을 내서 미안하단다. 잠자코 듣다가 물었다.


“딸, 엄마 요가수업 그만할까?”


“그치만 그건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거잖아. 너무 오래만 하지 않으면 엄마가 요가수업하고 유튜브하는 거 나도 좋아. 나는 그냥 엄마랑 산책하는 것도 좋고, 엄마랑 밥 먹으면서 얘기하는 것도 좋고, 또 엄마랑 영어공부도 같이 하고 싶고, 여행도 많이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엄마가 너무 바빠지는 게 싫은 거야.”


“그럼 우리 어떻게 할까?”


질문을 던져놓고 아이의 이야기를 또 한참을 들었다. 그렇게 달빛을 맞으며 함께 걷다보니 온몸을 꽉 채웠던 서운함과 원망은 강바람에 조금씩 날아가 버리고 어느 샌가 조근조근 조잘대는 아이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이 모든 것들이 좋아하는 일과 사랑하는 아이를 모두 가졌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더없는 축복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빛나는 축복이 내게 준 과제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아름다운 연결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난 오늘, 엄마 17년차라지만 작은 아이는 이제 열세 살. 아직은 엄마로서 충실히 아이를 기다려 주어야 할 시기임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요가는 어디까지나 다시 오지 않을 이 소중한 시간을 더 깊이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도우미일 뿐이라는 것도. 물론 이 역학이 영원히 계속되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잘 자란 아이들이 엄마가 요가를 통해 또 다른 존재들과 더 깊이 만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줄 그 시간도 반드시 와 줄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 날이 올 때까지는 조금 더 느긋하게 아이를 기다려 보기로.


그리고 무릎을 친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in Yoga> 여전히 나 자신을 위한 수련이었음을 비로소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in Yoga>란 사랑하는 아이(그리고 내 안의 ‘아이’)를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깨워내는 요가였던 거구나!


요가로 나를 깨우고, 그 힘으로 아이를 기르고, 그렇게 얻은 여유로 이 힘을 필요한 이들과 나누는 착한 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고유한 과제가 되겠구나! 들이쉬는 숨과 함께 평화롭고 충만한 에너지가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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