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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봄비가 주는 몇 가지

아름다운 봄과 비는 3월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봄은 누구에게나 온다. 하지만 각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겐 외투를 벗을 수 있는 그 날이 봄이다.  봄을 기다리는 여성에겐 하늘 거리는 옷을 꺼내 입을 수 있는 날이 봄이다. 농부에겐 흙이 녹고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그 날이 봄이다. 그리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에겐 봄비 오는 날이 봄이다.


 요 근래 미세먼지가 기승이다. 미세먼지는 코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청명하고 부드러운 하늘을 본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무거운 잿빛의 칙칙한 하늘만 며칠째. 영국 사람들이 왜 그리 우울한 노래들을 만들었는지 십분 이해가 되었다. 이러한 시각적 침범은 봄의 기대감을 자꾸 침전시킨다. 


 그러던 하늘이 비를 뿌렸다. 사람들의 마음속 기우제가 통했던 까닭일까. 많지는 않지만 미세먼지를 약간은 씻어내릴 봄비가 슬며시 내렸다. 봄비는 이은하의 <봄비>처럼 장엄하게 슬프지 않았다. 단지 박목월의 시처럼 뭉근하고 은근한 그리움 정도 될까. 투르르 투르르 소리를 내며 봄 비는 상큼하게 슬레이트 지붕을 두드리고, 자동차 지붕을 두드리고, 흙 알갱이들을 두드렸다. 




 봄비는 그렇게 시각적 공해를 해소해 주었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것들을 선사한다. 닫힌 투명한 창문 너머로 봄비가 지구에 닿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린다. 사각사각, 스스 스스... 그것은 저 멀리 장을 보고 돌아오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와 비슷하다. 그것은 태초의 그리움과 많이 닮아있다. 겨우내 차가운 기억의 온도를 녹이기 위해 봄비는 존재한다. 그래서 바라보는 봄비의 소리는 따뜻하다. 하지만 봄비는 겨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신발 끝부터 조금씩 젖어 올라오는 봄비는 차갑다. 옷이 젖고 손이 젖고 걷는 이의 마음까지 적신다. 젖어버린 마음은 조용한 공간, 따뜻한 차 한잔으로 녹여야만 했다.



봄비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와 닮았다


차가 한잔 나오고 차 위에 수증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것은 봄의 몸부림과도 비슷하다. 수증기를 후.. 불어서 날리고 코끝을 향기롭게 스치는 뜨거운 차를 호로록 불어가며 마셔본다. 따스한 차 한잔이 온몸을 일주하고 나니 봄의 겨울 내음은 어느 정도 사라져 갔다. 

 창가에서 3월의 빛이 스며들어 왔다. 그 빛은 강렬하지 않았고, 슬프지 않았다. 스피커에서는 웅장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클래식은 3월의 빛과 참 잘 어울렸다. 그 분위기는 딱 비 오는 봄날과 어울렸다.  



H는 빛 사이에서 그림을 그렸다. 3월의 생동감 사이에서 고요히 있는 자작나무를 그렸다. 고요하게 한 명은 그림을 그리고, 한 명은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에 고요한 공간이 떠 있었다. 고요해진 봄 사이로 저 멀리 빗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 모든 소리가 소멸한 듯 그렇게 봄은 흐르고 있었다.



봄비는 3월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한바탕 비가 그치고 밖을 나가보니 방울방울 봄이 걸려있다. 방울 속의 봄은 반대이다. 나무들은 거꾸로 자라고, 물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고 있다. 봄은 겨우내 관성을 깨고 천지개벽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봄은 비와 함께 3월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3월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끝>




사진/글: 신상천(hyer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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