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서리를 한 후 한동안은 국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철커덕, 철커덕.”
국수 공장 안에서 기계가 길게 국수 가락을 뽑아내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얗고 긴 국수 가락이 끊어지지 않고 길게 꼬리를 이어서 아래로 축 늘어지면 대나무 살로 가볍게 떠안아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촘촘히 걸려있는 국수 건조 걸이에 걸어서 바람을 쐬었다.
그런 국수 공장 바깥에서 수상한 그림자들이 어슬렁거렸다. 아이들이 ‘국수 서리’를 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빼꼼한 눈으로 공장 안을 살폈다.
“아저씨 있나?”
“…….”
“뭐하노? 아저씨 있나?”
“좀 있어봐라….”
아이들은 두리번거리며 키가 큰 남철이를 쳐다보았다.
“됐나?”
아이들은 조바심이 났는지 남철이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오늘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었는데도 꽁보리밥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내 배가 푹 꺼져있었다.
“들키면 우짤라꼬?”
“들키면 도망가면 되지.”
“잡히면 클(큰일)나는데.”
“그래도 우짜노.”
아이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신호 오기만을 기다렸다.
“됐다.”
이윽고 주인아저씨가 잠시 동안 마당에서 보이지 않자 남철이가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아이들은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주위를 살피면서 국수 다발이 걸려 있는 건조대로 가서 국수 다발을 걷어서 부리나케 공장 대문 바깥으로 내달렸다. 국수 다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투두둑하며 국수 다발이 부러져 발아래로 밟혔다. 아까운 국수라고 생각되었지만 빨리 도망가야 되기 때문에 주울 수도 없었다.
아이들은 공장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서 국수 다발을 펼쳤다. 국수는 말리기가 다 된 것인지 바삭하게 잘 말려져 있었다. 뛰어 오느라 국수 다발이 많이 버려졌지만 아이들이 먹기에는 그래도 충분한 양이었다.
국수는 평소보다는 조금 짜게 느껴졌지만 허기진 아이들에게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국수 가락을 입에 가득 넣고 우물거리자 짠 소금 기운이 입 안에 가득 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몇 번 계속 씹자 짠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쪼르륵하던 배도 국수 가락이 들어가자 잠잠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물을 찾기 시작했다. 몇 번을 물을 마셨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국수가락을 먹고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배가 산만큼 부풀어 올랐다.
저녁이 되었다.
“국수 공장에 가서 국수 한 다발 사 오너라.”
“예?….”
“저녁에 국수 끓여 먹어야겠다.”
낮에 친구들과 국수 서리를 해서 한바탕 난리를 피웠는데 그날 저녁에 국수를 또 먹게 된 것이다. 국수를 먹는 게 새삼스런 일은 아니었지만, 낮에 생 국수를 먹고 짠맛 때문에 물을 한껏 들이키며 고생을 한 터라 아직도 입에서 밀가루 풀내가 나고 짠맛이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낮에 있었던 국수 서리 때문이었다. 국수 서리만 아니었으면 아무 걱정이 없었다. 국수공장에 가서 국수를 사기도 하고, 밀가루를 사 오기도 하였다.
국수공장에 들어서니 마침 주인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낮에 마당에 널어놓았던 국수 다발들을 조심조심 공장 안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어떻게 왔노?”
“예… 국수 한 다발만 주이소….”
내 목소리는 모기소리만큼 작아져 있었다. 도둑질을 하면 이런 것인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인아저씨가 금방이라도 “네가 도둑놈이지” 하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니는 오늘 우리 공장에 안 왔제?”
“예?”
“오늘 낮에 아-들이 공장에 와서 국수를 서리해 갔는지 국수 다발이 몇 개 없어졌거든.”
“저는 몰라예….”
주인아저씨는 나를 바라보시면서 웃으시며 말을 이어갔다.
“갸들 오늘 물깨나 먹었을끼다. 낮에 널어놓았던 국수가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말이다. 소금 배합을 잘못했는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소금이 많이 들어갔거든. 갸들 그 국수 먹고 괜찮은가 모르겠다. 친구들 만나면 한번 물어봐라 괜찮은가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배 안에서 짠 물이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낮에 국수를 먹고 그렇게 물을 많이 들이 킨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평소 같으면 조금만 물을 마시면 괜찮았는데,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저녁 내내 물만 퍼 먹었기 때문이다.
“갸들 보면 국수 가락 떼 갈 때 조심해서 떼 가라고 해라. 다른 국수 가락들 안 부러지게 말이다.”
“예….”
국수공장을 나오자마자 내 입에서 휴~ 하고 한숨이 나왔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생각났다. 죄짓고는 못 산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던데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국수 먹어라.”
“안 먹어요.”
“왜?”
“낮에 친구 집에서 많이 먹었어요.”
“별 시런 놈 다 봤네….”
어머니는 무슨 영문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부엌으로 가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낮에 뭘 먹었길래 그래 물을 찾노?”
어머니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으셨다.
물을 먹어도 짠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저녁 내내 물을 먹으면서 다시는 국수 서리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나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부엌 아궁이 곁에 남아 있는 국수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입에서 다시 짠맛이 핑 돌았다.